[사설]돼지열병 즉흥 방역으로 시뻘게진 임진강

경인일보

발행일 2019-11-13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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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국내에 상륙한지 두 달이 가까이 됐지만 바이러스의 정확한 유입경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대신 정부의 즉흥적인 방역으로 인한 후유증은 심각하다. 최근엔 후유증의 극단적인 사례까지 발생했다. 미처 매몰하지 못한 돼지 사체더미에서 고인 물이 임진강 지류인 연천군 마거천을 시뻘겋게 물들인 것이다.

파주에서 ASF 바이러스가 최초 발견된 이후 당국은 발생농가를 중심으로 방역선을 구축하며 유입 경로 추적에 나섰지만, ASF가 수도권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도깨비 불 처럼 출몰하자 결국 강화, 김포, 파주, 연천 등 4개 시·군에서 사육 중인 돼지 전체를 살처분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민통선 안팎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야생멧돼지 사체가 잇따라 발견되자 뒤늦게 멧돼지 포획을 방역대책에 포함시켰다. 처음부터 바이러스 매개체로 주목받았던 북한발 야생멧돼지 대책을 간과한 채 발생지역 돼지 절멸을 단행하자 농민들은 거세게 반발하기도 했다.

문제는 정확한 매뉴얼과 장비 없이 살처분을 강행하는 바람에 심각한 후유증을 자초한 점이다. 맨 처음 살처분이 진행된 강화군에서는 4만3천여 마리의 돼지사체를 담아 매몰한 플라스틱 저장조에서 부패가스가 분출하면서 주민들이 악취의 고통에 시달렸다. 경기도는 문제가 더 심각했다. 파주, 김포, 연천에서 경기북부 돼지 사육량의 60%에 달하는 37만3천마리를 살처분했지만, 저장용기 부족으로 돼지 사체를 산 처럼 쌓아놓아야 했다. 임진강 마거천을 붉게 물들인 것도 연천군 민통선내의 돼지 산이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12일 "상황에 대한 인지가 늦었다"며 사과하고 환경부, 지자체와 함께 합동점검반을 꾸려 매몰지 일제 점검에 나서겠다고 뒷북을 쳤다. 정부가 중국과 북한의 ASF 확산경로를 주목한 건 국내 상륙 1년 전 부터다. ASF 국내 상륙을 막을 순 없어도, 대책을 세우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방역대책인 살처분 매뉴얼은 엉망인 것으로 드러났다. 면밀한 매뉴얼이 없으니 살처분 시기와 규모를 놓고 혼란을 겪고, 매몰지를 정하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살처분 돼지 저장용기는 제 때 공급되지 않았다.

ASF 방역을 위해 불철주야 애쓴 일선 공무원들의 헌신과 생업을 포기한 돼지사육 농가의 피눈물을 모두 허망하게 만든 정부의 무질서한 방역정책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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