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왜 그렇게 안 하세요

후안 마요르가 연극 '맨 끝줄 소년'
선생 헤르만과 학생 클라우디오
보는 입장따라 다양한 의미 생산
경우에 따라 시선이나 창작
때론 가족·삶에 대해 깨닫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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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대 경희대 객원교수
후안 마요르가의 연극 '맨 끝줄 소년'(10월 24일~12월 1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은 수수께끼와도 같은 작품이다. 글쓰기 수업에서 선생과 학생으로 만난 헤르만과 클라우디오가 이 수수께끼의 주요 인물이다. 두 인물이 관객에게 제출한 수수께끼는 답을 구하기 힘든 수수께끼가 아니라 답을 구했다고 생각할 때 새로운 수수께끼가 시작하는 그런 수수께끼에 가깝다.

클라우디오는 맨 끝줄에 앉아 있는 학생이다. "아무도 거기는 못 보는데 거기서는 모두를 보지." 헤르만이 아내 후아나에게 클라우디오가 제출한 글쓰기 과제물을 읽어주며 한 말이다. 헤르만이 무심코 던진 이 말은 연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강력하게 되돌아온다. 물론 그 자리는 관찰하기 좋은 곳이다. 그러나 세상 모두를 보는 그런 좌표는 없다. 아내에 대해 다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헤르만이 그의 아내를 다 보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헤르만은 작가로서는 실패한 문학 선생이다. 헤르만이 클라우디오에게 부여하는 글쓰기 과제는 점차 요구로 바뀌어 간다. 마치 클라우디오에게서 자신의 유년을 찾기라도 한 듯하다. 헤르만은 첨삭을 핑계 삼아 창작에 관해 설파한다. 문학 창작을 위한 교본에 나올 법한 지침이 넘쳐난다.



이를테면, "등장인물은 뭔가를 원해, 그런데 원하는 걸 이루자니 문제들을 만나게 되는 거야. 그 등장인물에게 라이벌, 적들이 나타나는 거지. 주인공과 대립하는 적대자들 말이야." "등장인물의 기분을 네가 묘사하려고 하지 마, 등장인물의 행동들을 가지고 우리, 독자들이 파악하게 해." "좋은 결말을 위해 필요한 두 가지가 뭔지 아니? 독자가 이렇게 말해야 해, 이건 예상하지 못했어, 하지만 다른 방식도 안 되겠다. 이게 좋은 결말이야. 필연적이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거. 그럴 수밖에 없으면서 반전이 있는 거." 그리고 마침내 제목까지 제안한다. "제목은 독자와 계약을 맺는 거야. 전쟁과 평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죄와 벌, 바냐 아저씨…. 맨 끝줄 소년 어때?"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로버트 맥키에 이르기까지 창작에 관해 수많은 사람들이 했던 말이 헤르만의 입에서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서재는 책으로 넘쳐난다. "이렇게 많은 책을 보면 질리지 않니? 여기서 헤르만은 노아의 홍수 때 배 안에 있는 것처럼 느끼고 있어. 여기를 벗어나면 홍수인 거지. 네 나이에 벌써 그랬어"라고 헤르만의 아내 후아나는 말한다. 창작에 관한 이론에는 전문가일지 몰라도 자신과 아내에 대해서는 무지한 인물이다.

헤르만은 삶과 결합하지 않은 앎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왜냐하면, "선생님은 어떻게 하는지 아시면서 왜 그렇게 안 하세요?"라는 클라우디오의 물음에 헤르만은 "나도 해봤어. 예전에. 내가 그다지 훌륭하지 못하다는 걸 깨달을 때까지"라고 답할 뿐이다. 그렇게 답한 이후에도 클라우디오의 글쓰기에 대한 제안을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해. 이야기 없는 인생은 아무런 가치가 없어"라며 더 강력한 이야기를 요구한다.

헤르만과 클라우디오는 연극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야 결별한다. "선생님을 처음 알았을 때부터 어떻게 사시는지 보고 싶었어요. 첫 수업부터요. 저 아저씨 집은 어떨까? 누가 저런 타입이랑 같이 살 수 있을까? 완전히 제정신이 아닌 여자가 있을 거야, 너무 제정신이 아니라…"라고 클라우디오가 마지막 일격을 가한다. 헤르만은 클라우디오의 따귀를 때린다. 헤르만이 그토록 주장했던 결말의 두 조건을 모두 갖춘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필연적이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으면서 반전이 있는 결말 말이다. 어쩌면 헤르만은 이제 자신의 서재인 방주에서 걸어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클라우디오는? 수수께끼로 남는다.

좋은 글을 다시 읽을 때마다 우리는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내거나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는 헤밍웨이의 말처럼, "맨 끝줄 소년"은 보는 입장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생산하는 연극이다. 때로는 시선이나 창작에 관한, 경우에 따라서는 가족과 삶에 관한 연극으로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권순대 경희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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