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저어기 마중 나와 계시다
뼈마디 마디 끝마다 불 밝히시고
굶주린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는 어둠 속에 나와 계시다//
날마다 나를 설거지하시다
늙은 손 굽은 등으로
마지막 남은 힘으로 등불 켜시고
저 풍전등화의 골목에 나와 계시다//
여름 구석에서 가을을 장만하는 풀벌레소리
벌써 애간장을 녹이는데//
나는 가을이 되면 누구나 한번쯤 하는
이별하는 사랑 하나도 이루지 못한 덜 떨어진 놈인데//
내 슬픈 길을 밝혀주려
어머니 저어기 홀로 나와 계시다
김왕노(1957~) |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
우리는 무엇인가를 자주 떠올릴 때 주로 눈에 비쳤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그것은 무의식적으로 가까이 있는 것보단 멀리 있는 것을, 부족하지만 채울 수 없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데, 이른바 돌아올 수 없는 결핍을 말한다. 생애 처음 당신이 보았던 사람, 당신을 그렇게 지켜주었던 어머니 죽음은 고인 시간 속 흐린 잔상을 통해 각인되고 다시 부활하며 영원히 완성되어 나타난다. 어머니라는 이름 앞에 성장이 멈춘 기억은 기다림이라는 꽃말을 가진 7월에 개화하는 2년생 '달맞이꽃'처럼. 삶에서 죽음에의 삶이 시작되는 당신에게 '어머니 저어기 마중 나와 계시'기도 하고, '날마다 나를 설거지하시'듯 씻어주기도 하고, '뼈마디 마디 끝마다 마지막 남은 힘으로 등불 켜시고' 계시지 않던가. 그렇다면 당신을 위해 눈물 흘리시던 어머니는 연하고 물기 많은 초본식물같이 어두운 삶의 길목에서 '내 슬픈 길을 밝혀주려 저어기 홀로 나와' 피어있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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