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경의 '노래로 본 사자성어']비련애가(悲戀哀歌)

고재경

발행일 2019-12-23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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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국왕 루이 16세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비극적 사랑
누구에게나 비련은 아픔으로 다가와
그러나 그 쓰라림에 집착하면
자칫 불행한 운명 직면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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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
비련애가(悲戀哀歌)는 슬프게 끝나는 사랑의 심정을 읊은 노래를 뜻한다. 비련의 정점은 연인과의 이별로 인해 가슴이 구멍 나고 심장이 정지된 것처럼 느껴질 때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든지 한두 번쯤 이렇게 비련의 아픔을 겪는다. 하지만 끝도 없이 애련(哀戀)의 괴로움에 머물 수는 없다. 안타까운 슬픈 사랑의 순간은 짧을수록 좋다.

가수 나비가 부른 '너뿐인데' (작사:빨간양말, 고재경, 작곡:빨간양말, 앤드그루브, 고재경) 노랫말은 비련애가 그 자체이다. 가사 도입부는 이렇게 시작한다: '날 밀어내는 눈빛 내 맘이 무거워/서러움 밀려와서 많이 두려워/더 이상 너의 사랑이 아닌가 봐/너에게 난 이제 아닌가 봐/'. 사랑하는 연인들은 눈빛만 바라봐도 상대방의 감정 상태를 금방 눈치챈다. 눈은 마음의 거울이다. 따라서 눈빛은 서로의 마음을 단숨에 읽어내는 풍향계이다. '너뿐인데'의 화자는 자신을 '밀어내는 눈빛'을 연인에게서 알아차린다. 그의 차디찬 심정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젠 '더 이상' 연인의 사랑이 아닐 수 있다는 염려에 마음을 졸인다. 또한 연인 없이 혼자서 도저히 살아갈 수 없다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이런 와중에 연인이 자신의 곁을 훌쩍 떠난다는 생각에 이르자 '말도 안 된단 말야'라고 현실을 부정하며 서글픔을 토로한다. 연인이 자신의 곁에서 '점점 더 더 멀어져' 간다고 울먹거리는 화자는 결국 쓰라린 눈물을 터뜨린다. 물론 이별을 직감한 가슴 아픈 눈물이다. 그는 연인 '너'만을 사랑하고 있는데 왜 자신을 떠나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내 눈물이 모든 걸 말해주잖아/너 없이는 안 된다고/떠나면 안 된다고/'.

이제 화자의 상처받은 마음은 마치 자신의 육신을 '도려내는 바람' 같이 얼얼하고 시리기만 하다. 야속하기 짝이 없는 연인의 '손'에 의해 타의로 떠밀린 화자의 심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연인에 대해 여전히 아쉬운 미련이 남아 있다. 쏟아지는 '눈물이 앞을 가린대도' 연인밖에는 안 보이고 연인 이외의 목소리는 안 들린다고 애처롭게 고백한다. 셰익스피어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이 로미오와 비밀리에 만나고 고통스럽게 헤어지면서 '달콤한 슬픔(sweet sorrow)'이라고 말한다. '달콤한 슬픔'의 은유 속엔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사랑의 믿음이 깔려있다. 마찬가지로 '너뿐인데'의 화자도 헤어져야 하는 쓰라린 운명 앞에서도 가슴 속엔 언젠가 또 만날 수 있다는 '달콤한 슬픔'을 반복해서 되뇌고 있는지도 모른다.

화자는 이별이 엄습해오는 것을 깨닫고 두렵기만 하다. 더 나아가 자신도 믿기조차 힘들 정도로 마음이 처절하고 쓰라리다: '니가 어떻게 날 버려/내가 어떻게 널 잊어/'. 이와 같은 비련애가의 슬픔은 말로는 표현할 수조차 없는 화자의 애타는 절규이다: '내 눈물이 모든 걸 말해주잖아/나 없이는 안 된다고/버리면 안 된다고/'. 화자의 가슴 깊은 곳에서 분출하는 울부짖음은 곧 이별해야 할 운명에 대한 현실 수용으로 마음이 기울어진다. '하루에도 수천 번'이나 아니 수만 번이라도 연인만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그가 아니던가. 그러나 이제 와서 그가 어떠한 조치를 취해야 할 일은 전혀 없다.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마냥 밉기만 한 것이다. 그로서는 '그냥 이대로' 사랑하는 임을 떠나 '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애처롭다. 화자의 얼굴엔 아직도 눈물이 흐른다. 그 눈물이 이제는 더 이상 연인을 '사랑해선 안 된다고' 그의 귓가를 구슬프게 적시고 있다.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비극적 결말의 슬픈 사랑의 주인공으로 떠오르는 인물은 마리 앙투아네트이다. 그녀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서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의 왕비였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의 거센 물결에 휩쓸려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비련애가의 여인이라 할 만하다. 누구에게나 비련은 아픔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비련의 쓰라림에 집착하면 마리 앙투아네트처럼 자칫 불행한 운명에 직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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