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한 가정을 집어삼킨 거대한 불씨 '와일드라이프'

유송희 기자

입력 2020-01-01 13:5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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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와일드라이프'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사람들이 여기 오는 건 좋은 일들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란다."

아주 작은 균열이 전부를 덮치는 때가 있다. 폴 다노 감독의 데뷔작 '와일드라이프'는 화목했던 가정이 조금씩 어긋나는 순간을 그린다.

영화는 리처드 포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1960년 미국, 조(에드 옥슨볼드 분)는 부모님과 함께 몬태나로 이사를 오고 아빠 제리(제이크 질렌할 분)는 산불을 진압하기 위해 집을 떠난다. 그 사이 엄마 자넷(캐리 멀리건 분)은 수영강습 회원인 워렌 밀러(빌 캠프 분)와 점차 친밀해지기 시작한다. 그런 가운데, 조는 방과 후 사진관에서 일하며 카메라 다루는 방법을 배운다.

부부의 갈등은 직장 문제를 시작으로 불씨를 터뜨린다. 이사 후 실업 문제에 직면한 두 사람은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애를 쓰지만 서로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제리는 해고 후 쉬운 일만 찾아 방황하고, 자넷은 그런 남편에게서 벗어나 더 나은 삶을 갈망한다.

배우 캐리 멀리건은 작품에 대해 "가족을 향한 사랑의 한계와 힘든 시기에 시험을 받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영화 '브라더스(2009)' 이후 10년 만에 재회한 제이크 질렌할과 캐리 멀리건은 갈등의 골이 깊어진 부부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연기했다. 그들은 침묵 속에서 서로의 기분을 눈빛으로 쫓거나, 사이에 문을 닫고 대화를 거부한다. 그중 거실 한가운데서 언성을 높이며 다투는 모습은 작품을 더욱 긴장감 있게 끌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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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와일드라이프'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이때 감독은 부부의 갈등을 대조적인 이미지로 표현했다. 가족의 만류에도 목숨을 걸고 화재 현장으로 뛰어들려는 제리와, 생계를 위해 수영 강습에 나선 자넷의 모습은 완벽하게 다른 색감으로 그려진다. 영화는 거대한 산을 휘감는 불꽃과, 투명한 물이 가득 담긴 수영장을 번갈아가며 비춘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는 소년 조가 서 있다. 영화는 조의 시선을 따라 전개된다. 특히 몬태나의 산불을 바라보는 그의 뒷모습은 관찰자적인 위치를 더욱 잘 드러낸다. 그가 마주한 불꽃은 한 가정을 집어 삼켜버릴 것처럼 거칠게 타오른다.

폴 다노는 "우리 모두 다양한 경험을 하고 역경, 고통, 좌절을 겪는다. 어린 나이에 인생이나 나 자신의 양면을 받아들이게 된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부재와 어머니의 외도. 완벽하지 못한 어른들 틈에서 소년은 무력함을 자양분 삼아 자란다. 하지만 가정이 붕괴 되기 직전에도 그는 울지 않는다. 다만 함께 사진 찍을 것을 권유할 뿐이다.

'사람들이 여기 오는 건 좋은 일들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진관 주인의 말처럼, 사진은 행복한 순간을 영원히 가둬놓는다. 영화는 그 순간을 품에 안은 채 성장한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의 역경을 헤쳐갈 사람들에게 공감과 위안을 준다.

러닝타임 105분. 25일 개봉. 15세 관람가.

/유송희기자 ys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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