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경인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작]현해원 '해파리의 밤' ①

경인일보

발행일 2020-01-02 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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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돈이 급했던 나와 방을 옮겨야 했던 윤은 잡지사 이 대리 덕분에 함께 살게 되었다
어깨에 해파리 문신… 바다 냄새가 풍겼던 윤의 갑작스러운 투신자살
반송당한 유골단지는 나에게 왔다… 가족이라는 뿌리에서 내던져진 존재였다


윤의 어깨에 달이 떠 있다고 생각했다.

윤에게서는 바다 냄새가 풍겼다. 나는 윤을 통해 이제껏 인간이 들어가 보지 못한 심해에서 올라오는 냄새를 맡고는 했다. 냄새의 근원은 그녀의 어깨에 새겨져 있는 해파리 문신이었다.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때때로 그런 생각에 휩싸일 때가 있었다. 윤은 내게서 등을 진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가스난로가 조용히 타들어 가는 소리와 냉장고의 냉각기가 조용히 회전하는 소리가 났다. 

 

윤의 숨소리는 그런 작은 소음에도 묻힐 정도로 희미했다. 윤은 때때로 새벽에 일어나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있을 때가 있었다. 같이 산 지 이 년이 지났지만 나는 한 번도 윤의 그 행동에 대해 얘기해 본 적이 없었다.

 

그에 대해 얘기하는 순간 윤이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손을 뻗어 윤의 옷자락을 잡으려다가 그만두었다. 대신 더욱 숨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몸을 웅크린 채 이불을 코끝까지 뒤집어썼다. 

 

드러운 발바닥이 손끝에 닿았다. 윤은 내가 지금 깨어 있는지 모를 것이다. 윤의 어깨뼈에서부터 날개 죽지까지 새겨져 있는 해파리를 바라봤다. 시리도록 새파란 그 해파리였다. 

 

마치 바다를 떠다니는 모습 같기도 했고, 높은 곳에서 내던져지는 모습 같기도 했다. 달도 없는 지독히 어두운 밤이었다. 윤의 어깨의 해파리가 달처럼 발광했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경찰이 초조하게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치며 내 입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생각하고 내가 겨우 짜낸 말은 모르겠다는 말 뿐이었다. 정말로 나는, 윤이 왜 그날 갑자기 투신자살을 했는지 조금도 짐작할 수 없었다.

"이 년 동안이나 같이 살던 친구인데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

경찰관의 말에 묘한 짜증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윤의 죽음은 갑작스럽다. 일도 원만히 풀려가고 있었고 질 나쁜 남자친구를 만난 것도 아니었다. 경찰이 주변 다른 사람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지만 그들 역시 경찰이 원하는 답은 해주지 못한 것 같았다. 

 

직장에서의 윤은 언제나 해사하게 웃고 있었다. 그들에게 윤은 살포시 쌍꺼풀이 잡힌 눈을 휘며 웃던 모습으로만 존재했다.

말수 없는 내가 윤과 함께 살게 된 것은 잡지사의 이 대리 덕분이었다. 나는 밀린 월세 때문에 더 돈을 아껴야 하는 상황이었고, 윤은 계속 살던 방을 당장이라도 옮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집주인이 사다리를 타고 2층에 살던 윤의 방에 들어오려 했다고 했다. 혼자 사는 여자는 쉽게 취할 수 있는 꽃처럼 여겨지기 십상이었고, 윤처럼 해사한 여자에게는 더 더욱 그러했다. 모든 사정을 알고 있던 이 대리는 나이대가 비슷한 우리에게 둘이 같이 사는 것이 어떠냐고 제의했다. 

 

나는 당장 돈이 급했고 윤은 싼값에 보안이 더 괜찮은 집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랐다. 단순했다. 윤과 함께 살게 되고서 알게 된 것은, 윤은 일할 때 외에는 말수가 급격히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밖에서 많은 말을 하기 때문에 굳이 집 안에서 말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걸지도 모른다. 나는 다른 사람과 말을 하는 게 익숙하지 않았고, 누구보다 익숙한 윤은 많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우리는 같은 침묵의 지점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더없이 편한 그 시간이 좋았다. 방안에는 윤의 냄새가 가득했다.

윤은 인터뷰어였다. 그녀는 타인의 말을 이끌어 내는 데 누구보다 능숙했다. 말을 이끌어내는 것뿐만 아니라 기다리는 데에도 소질이 있었다. 윤은 타인의 입이 열리길 오랫동안 기다리는 것이 가능한 사람이었다. 

 

사람의 기분을 단번에 파악해서 적절한 태도를 보이는 능력에 관해서 윤을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준비해 온 말만 하려고 마음먹었던 사람도, 윤의 앞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쌓아뒀던 말을 풀어버리곤 했다. 윤과 만난 것은 무더운 여름이었다. 

 

그때 나는 작은 잡지사의 의뢰로 윤의 인터뷰 현장을 찍으러 갔다. 나는 사진을 조금 공부했을 뿐인 햇병아리 사진기자였고, 혼자 현장에 나가 본 경험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간 윤의 인터뷰 현장을 따라다녔다.

 

안 팔리는 연예인, 탈북자, 성 소수자, 무명 연극배우 등 다양한 사람들이 윤과 인터뷰를 했다. 눈앞의 모든 것이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 같이 보였던 무더운 여름날, 비싼 양복이 젖는 것도 개의치 않고 인터뷰 도중 눈물과 콧물을 쏟아내던 한 사업가를 기억한다. 

 

윤은, 이를테면 살균된 바늘 같았다. 그녀는 곪아서 부풀어 오른 상처에 구멍을 내고 곪은 진물을 빼내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 윤을 기억할 때면 난 그녀의 어깨에 있던 해파리의 촉수를 떠올리고는 했다.



나는 언제나 내가 부끄러웠다. 오른쪽으로 심하게 함몰된 두상은 언제나 내 뿌리 깊은 콤플렉스였다. 지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나를 피할 때마다 내가 세상에 잘못 태어난 존재임을 인정해야 했다.

사람은 자라면서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을 모두 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거울을 볼 때마다 제왕절개로 태어나던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고는 했다.

 

아주 오래전 머리를 우악스럽게 잡아당겨지던 감각이 되살아나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엄마는 나를 제왕절개로 낳았다. 나는 태아 때부터 글러 먹은 자식이어서 뱃속에서 몸이 뒤집혀 있었다고 했다. 

 

의사는 우악스럽게 내 머리를 잡아당겼고 그 과정에서 내 두상은 심하게 함몰되었다. 채 뜨지도 못한 채 눈에 쏟아지던 밝은 조명들이 내 눈앞에서 산발적으로 터지는 감각이 눈꺼풀 뒤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모든 감각은 내게 선명히 각인되었다.

언젠가 실내에서도 모자를 쓰고 있는 사진작가의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 그날 나는 막연히 사진을 공부하자고 마음먹었다. 단순한 계기였다. 

 

무엇이든 좋으니 자연스럽게 내 머리를 숨길 수 있는 작업이 필요했다. 하지만 사회는 그리 막막하지 않았다. 나는 여름에도, 실내에서도 모자를 푹 눌러 써서 내 두상을 가리고는 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런 나를 그리 신경 쓰지 않고 지나쳐갔다. 그러나 굳이 헤집어 내려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나타났고, 그때마다 나는 혀를 깨물고 싶은 아득함을 느껴야 했다.

내 머리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흔히 두 부류로 나뉘었다. 위로 아니면 분노. 내 모습 그대로 아름답다는 같잖고 예쁜 말만 늘어놓는 위로거나, 그런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내가, 혹은 사회가 병들어 있다는 분노였다.

 

어느 쪽도 달갑지 않았다. 그냥 다 꺼져 주었으면 했다. 나는 내가 추했고, 사회에 맞서 더 강해지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단순해지고 싶었다.


윤은 그들 중 어느 부류도 아니었다. 윤은 집에서도 모자를 쓰고 있는 날 보고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것은 내 오랜 습관이었다. 혼자 집에 있을 때도 모자를 쓰는 버릇은 여전했다.



사람은 모두 죽지 못해서 살아. 그 말은 내게 부적처럼 달라붙었다.

나도 윤의 촉수에 닿은 적이 있었다. 하루는 술을 잔뜩 마시고 취한 적이 있었다. 한 쇼핑몰의 상품 촬영 보조를 위해 일산의 한 스튜디오에 갔던 날이었다. 클라이언트는 내 모자가 예의에 어긋난다며 트집을 잡았다. 

 

어쩔 수 없이 많은 사람과 모델들이 오가는 커다란 스튜디오에서 모자를 벗어야 했던, 그런 날이었다. 어쩌면 사람들은 내게 별 관심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순간이 부끄러웠다. 나는 원래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날은 나답지 않게 술을 잔뜩 사 와서 말없이 들이켰다.

 

윤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맞은편에서 같이 술잔을 비워줬다. 윤에게 어떤 말을 지껄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속사포처럼 내 안의 뭔가를 계속 흘려보냈던 것은 어렴풋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어쩌면 사람의 말을 이끌어내는 윤의 능력이 거기서도 발휘되었을 수도 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윤의 촉수에 스스로 내 고름을 가져다 댄 걸지도 모른다. 뭔가를 말했던 것 같긴 한데, 모든 것이 모호했다. 다만 기억하는 것은 윤의 말 한마디었다.

사람은 모두 죽지 못해서 살아. 죽지 못해서 산다는 말이 왜 그렇게 내게 와 닿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말은 내게 달라붙은 부적이었다. 

 

나는 죽음이 무서웠기에 죽을 수 없었다. 단순한 이유였다. 그래서 나는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나는 살아남기로 했다. 그리고 내게 부적을 붙여준 윤은 살지 못해서 죽었다.



며칠 전 밤, 윤은 산책을 나가듯 집을 나섰다. 나는 편의점에라도 가나보다, 하고 가볍게 넘겼을 뿐이었다. 특별한 예감을 느끼지도 않았고 설거지를 하다가 유리컵을 깨트리지도 않았다. 

 

평소처럼 별다를 것 없는 저녁이었다. 딱 하나 다른 게 있었다면 내 슬리퍼가 없어졌다는 것뿐이었다. 윤과 같이 살게 됐을 무렵, 마트에서 함께 장을 보다가 문득 윤이 사줬던 것이었다. 

 

가족이 아닌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도 처음이었고 실내에서 슬리퍼를 신어 본 것도 처음이었다. 몹시도 푹신했고 부드러운 슬리퍼였다. 

 

나는 이 년 동안 매일 그 슬리퍼를 신었다. 굳은살이 당연하던 내 발이 조금씩 부드러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발바닥을 부드럽게 감싸는 감각이 좋았다. 

 

군데군데 실밥이 터지고 쿠션도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푹신했다. 이제는 슬리퍼 없이 걸으면 발바닥이 아려왔다. 윤이 사준 그 슬리퍼는 이제 나에게 너무 당연한 것이 되어 있었다. 

 

그날 나는 테이블에 앉아서 사진을 보정하고 있느라 슬리퍼를 신고 있지 않았다. 윤이 신고 간 것은 그 슬리퍼였다.

금방이라도 돌아올 사람처럼 집에서 입던 편한 옷을 입고 슬리퍼를 신고 공원을 지나쳐갔을 윤을 상상했다. 녹슨 헬스기구에서 운동하던 사람들이, 추운 밤에 맨발에 슬리퍼만 신고 걸어가는 윤을 보고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따라 해 보려고도 했다. 

 

취객이 앉아있는 편의점과 전구가 나간 가로등, 한적한 길가에서 혼자 춤추는 풍선 인형 따위를 지나쳐 어느 높은 상가에 올라갔을 윤을 가늠했다. 옥상은 닫혀 있었지만 창문은 언제나 열려 있었다. 

 

윤은 왜 하필 그 슬리퍼를 신고 나갔을까. 마지막으로 허공에서 내던져지는 새파란 해파리를 떠올리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영안실에서 흰 천을 뒤집어쓴 채 누워 있던 윤이 떠올랐다.

 

윤의 발이 지나치게 부드럽다고 생각했다. 등을 대고 누워 있었기 때문에 해파리는 보이지 않았다. 머리에 노이즈가 낀 것처럼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윤의 유골은 나에게 왔다.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온 윤이지만,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나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가 친구였을까.

 

나는 윤과 나의 관계를 정확히 정의할 수 있는 단어를 아직 찾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 우리는 친구였으므로 윤의 유골을 받는 것은 내가 되었다. 나는 계속 죽은 윤이 부러웠다. 

 

많은 사람들이 윤의 죽음을 슬퍼했고 그들의 기억 속에서 윤은 언제까지나 해사한 모습으로 박제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윤과의 기억만을 원했을 뿐 타다 남은 육체의 찌꺼기를 원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반송당한 윤의 유골단지를 깨끗한 서랍장에 올려 두었다.



윤의 찌꺼기와 내가 제법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경찰은 윤의 가족들에게도 연락했지만 그들이 윤의 유골을 거절했다고 했다. 

 

어쩌다 한 번씩 대화 할 때도 윤은 절대로 가족에 대한 얘기만은 하지 않았다. 윤의 유골을 안고 돌아오던 날, 경찰은 조사를 마친 윤의 노트북 따위를 돌려주었다. 실내화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경찰은 윤의 기록에서 특별히 자살의 이유를 찾지는 못했지만 홀로 걸어가는 윤의 모습이 폐쇄회로에 여러 차례 찍혔기 때문에 자살로 결정지었다고 했다. 

 

나는 새벽에 혼자 창가를 보며 앉아 있던 윤을 떠올렸다. 먹을 때를 놓친 생선조각처럼 홀로 하얗게 응고되어 가던 윤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쳤다.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새파란 해파리만이 부유하던 밤이었다. 

 

나는 어둠이 윤을 오래도록 좀먹던 그 새벽을 경찰에 말하지 않았다. 윤의 물건을 정리했다. 나름 오랫동안 같이 살던 방이었는데, 의외로 방에는 윤의 물건이 별로 없었다. 노트북과 몇 권의 책, 솔기가 터진 갈색 지갑, 자잘한 메모가 적혀 있는 껌 종이, 한 짝밖에 남지 않은 녹슨 귀고리, 손때 묻은 하얀 이어폰 등을 상자에 넣었다. 

 

자잘한 것들을 모두 긁어모아도 커다란 상자 하나에 다 들어갈 정도였다. 윤의 유골을 거절했다는 가족을 떠올렸다. 잡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윤이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물컹한 약간의 감촉만을 남기고 유연하게 내 손에서 빠져나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나는 이제 내가 왜 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자기 자신을 정의하지 못하는 것은 선천적인 흔들림을 동반한다. 

 

윤은 가족이라는 뿌리에서 내던져진 존재였다. 윤은 언제나 흔들리고 있었다. 윤의 어깨에 새겨진 파란 해파리처럼, 흔들리고 내던져지는 게 당연한 유연한 몸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입을 열기 위해 자신을 유연하게 만드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랬기에 윤은 아무것도 짊어지지 않았고 어딘가로 흘러갔고, 내동댕이쳐졌다. 

 

나는 언젠가 윤의 촉수에 닿았다. 그때 고인 나를 흘려보내는 법을 터득했다. 이번에는 내가 윤의 흔들림을 멈춰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단순했다.



이제 와서 알게 된 것이지만, 나는 윤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다. 

 

윤이 좋아하는 음식과 몇 번이고 돌려보던 이국의 영화, 그녀가 가지고 있던 음식의 알레르기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윤의 가족이 어떤 사람인지, 그녀가 인터뷰어 일을 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이 년이라는 시간을 공유했지만 우리의 그 시간은 대부분 침묵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우리 사이에 내려앉은 침묵이 불편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그 시간이 아쉬워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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