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김포 최초 서점 '해동서점' 운영했던 김기도·기율 형제

'해동 1950'… '서점은 문화' 정신 계승 감개무량
김포 해동서점 김기도 김기율
김포시 북변동 해동서점 본점을 차례로 경영한 김기도(왼쪽)·김기율 대표. 김포/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

언론인 출신 부친 설립 이어받아 경영
폐업 10년만에 문화자생공간 탈바꿈
"북변동 거리 재부흥 계기됐으면…"


해동서점은 한국전쟁 발발 직전인 지난 1950년 초 김포 북변동에 문을 열었다. 언론인이던 김성환(93) 선생이 고향을 위해 무엇을 남기면 좋을지 고민하다 설립한 김포 최초의 서점이다.

전쟁의 소용돌이에도 서점은 그 자리에 있었다. 폐허가 된 초가건물에 쓸만한 문짝을 구해다 덕지덕지 붙일지언정 '지역 유일의 문화공간'은 총부리도 쓰러뜨리지 못했다.



설립자의 3남2녀는 가업을 그대로 이었다. 이민간 둘째 딸을 제외하고 1977년 장남 김기도(69) 대표를 시작으로 사우동과 풍무동에 지점을 내는 동안 모든 자녀가 해동서점을 경영했다. 북변동 본점은 삼남 김기율(58) 대표가 1997년 큰형으로부터 물려받았다.

북변동은 과거 김포에서 가장 번성한 동네였다. 군청과 경찰서도 이곳에 있었다.

김기도 대표는 "전쟁이 나기 전에는 김포가 한강을 통해 마포로 가는 교역로의 중심도시였는데 38선이 그어지면서 갑자기 접경지가 됐다"며 "도시가 낙후하고 문화적으로도 소외되는 걸 안타까워한 아버지께서 서점을 만들고 난 이후에는 많은 주민이 '사상계' 등 잡지를 통해 정보를 얻고 문화를 교류했다"고 회고했다.

이들은 어릴 적 종로6가 도매상을 오가며 책을 짊어지고 낑낑대던 눈부신 기억이 있다.

김기율 대표는 "서점에 1천권의 책이 있다면 판매되는 건 100권에 불과하다"면서 "아버지는 바로 이 점을 강조하셨다. 판매가 중요한 게 아니라 주민들이 언제든 책을 접할 수 있는 작은 서점이 마을마다 존재해야 한다는 지론이셨다"고 말했다.

사회 분위기의 변화, 그중에서도 인터넷의 보급은 경영난을 불러왔다. 시인 김남주, 소설가 천승세 등 당대의 문인들이 찾아오고 한때 서울지역까지 51개교에 교과서를 납품할 만큼 성업한 해동서점은 2010년 문을 닫았다.

섭섭하지 않느냐는 자녀들의 물음에 아버지는 "주민이 원할 때 서점을 세웠고, 이제 주민이 원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 시대의 흐름이니 죄책감 느끼지 말라"고 토닥였다.

김포 청년들의 의지와 설립자 가족의 결단으로 해동서점 건물에는 지난 17일 폐업 10년 만에 문화자생공간 '해동1950'이 개장했다. 지상3층·지하1층 건물 전체가 청년·예술인·경력단절여성의 문화시설로 탈바꿈한 것이다.

두 형제는 "'서점은 문화'라는 해동서점의 정신을 이어갈 수 있어 감개무량하다"며 "해동1950이 북변동 거리를 다시 부흥시키는 시발점으로 역할을 해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김포/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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