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철 칼럼

[윤상철 칼럼]청년, 여성, 그리고 광장민주주의?

젊은 학자들 비정규직 미래 불투명
남성중심 기득권체제서 女 더 열악
직접민주주의 목청 포퓰리즘 양상
과도할땐 특수이익만 배타적 반영
공화주의, 민주주의적 독재 처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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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지난주에 한 학회의 워크숍에 참석했다. 토론의 주제는 '갈라진 진보, 세대와 광장의 정치'였다. '진보'라는 말이나 좌파·우파의 구분은 정치세력들의 자의적 개념 사용으로 인해 그 '정명(正名)'이 어렵기는 하다. 그럼에도 참석자들의 논의를 대략 정리하면, 현집권세력은 한국의 정치 지형상 좌파로 규정할 수 있고, 집권 전까지 단일한 대오로 뭉쳐 있던 좌파세력이 집권 후반기로 가면서 이른바 '조국사태'를 계기로 내부적으로 분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이들에 친화적이었던 청년, 여성 세력들이 점차 이탈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또 다른 문제 제기는 자유민주주의의 통치형태인 의회민주주의가 그 정치적 효용성과 대표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광장민주주의 등의 직접민주주의를 대체재 혹은 보완재로 불러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이른바 '86세대' 남성엘리트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의회와 정당체제가 여성이나 청년들의 이해관계를 전혀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면서 학계가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쏟아졌다.

청년과 여성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학계 역시 예외는 아니다. 교수 및 연구자의 길을 가고 있는 젊은 학자들은 학령인구의 감소에 따르는 대학구조개혁의 찬바람을 맞으면서 비정규직 강사와 연구원으로서 열악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그 미래도 대단히 불투명하다. 그 이유는 국가발전의 토대인 지식생산자들을 국가와 사회가 여전히 유한계급으로 인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취업절벽 앞에서 헬조선을 부르짖기는 여느 청년들과 마찬가지이다. 여성의 상황은 더 열악하다. 예비연구자들의 성비나 여성들의 연구역량 등이 과거와 다르게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 중심의 기득권적 대학교원체제는 요지부동이다.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여성들은 나이가 들수록 결혼, 출산, 육아 등의 압력을 더 받고 있으며 남녀의 상대적 차이를 논할 바가 아니다. 그로 인해 이들은 이제까지 결과적 평등과 소수자 및 약자의 배려를 주장해왔던 좌파들을 정치적으로 지지하면서 그들과 연합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한국 좌파에 실망하고 전지구적 좌파의 무관심과 무능력에 좌절하면서 현재의 정치적 거버넌스를 부정하고 새로운 급진민주주의적 개혁의 수레에 올라타고자 한다.

정치적 대표성을 상실했다고 생각하는 세력들은 의회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할 수도 있지만, 우회적인 수단으로 의회에 영향을 미치고자 한다. 최근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이른바 '광장민주주의'와 같은 직접민주주의적 양상들이다. 서초동과 광화문, 그리고 혜화동은 소용돌이치는 대중들의 반란이다. 이 광장에서 청년과 여성을 비롯한 다양한 이익들이 정치적으로 이슈화되고 동원된다. 일부 이슈들은 정치세력들을 통해 의회민주주의의 방향을 이끌기도 한다. 그러나 그 정치적 과실은 이들에 편승하거나 이들을 동원하는 정치 세력의 차지일 뿐이다. 더 안타까운 일은 대통령권력의 위임민주주의나 야당세력의 권력정치의 포퓰리즘적 선동에 동원되는 양상이다. 또한 광장민주주의가 갖는 감성적 소용돌이는 대중독재와 광장파시즘을 우려하게 하면서 체제의 불안정성을 키우기도 한다. 그들이 스스로를 동원하면서 내심 요구하고 있는 이익들은 일시적으로 표면적으로 정치적 담론에 반영되는 듯하다가 정치적 담합에 의해 어느덧 사라진다. 광장민주주의는 광장에서 먼지처럼 사라지고 잊혀간다.



그럼에도 민주주의가 과도하게 주장되면, 그 결과 힘을 지닌 집단의 특수한 이익이 선택적으로 수용되면, 다양한 집단의 이익갈등을 조정하여 최선의 일반의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민주주의를 배반하게 된다. 이에 일반적 정의와 모두의 이익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주체로 나서는 공화주의가 거론된다. 공화주의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특수한 이익만을 배타적으로 반영하는 민주주의적 독재로 변모하지 않도록 하는 처방전일 수 있다. 동양이나 한국의 공화주의는 그 서구적 경험이 없고 진영논리가 팽배한 상황에서 이른바 협치 거버넌스를 통하여 모두의 이익이 대표되면서 상호조정되는 그러한 사회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과도한 광장민주주의는 공화주의가 부재한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파탄케 할지도 모른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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