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원맨쇼 NO 1' 남보원

이영재

발행일 2020-01-23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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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겁이라는 저 무한대의 시간에 견줄 때 인간의 한평생이란 극히 찰나적 순간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간의 한평생을 마감하는 자리는 늘 슬프다. 특히 그가 삶 속에서 차지했던 자취가 뚜렷하면 뚜렷할수록, 그가 남긴 체취가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그가 존재했던 자리의 비어있음은 남아있는 사람들의 가슴을 저리게 한다. 그것은 보통사람들의 삶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이자 언론인 정규웅의 '불꽃처럼 살다간 예술가들의 초상'에 수록된 한 구절이다. 희극인 남보원의 부음을 듣고 이 글을 찾아 다시 읽었다.

6·25가 우리들의 정서를 갈기갈기 찢어 놓았던 시기, 그 텅 빈 가슴들을 웃음으로 메워준 남보원이 마지막 웃음을 거뒀다. 본명 김덕용. 향년 84세. 그는 평안북도 순천에서 태어나 1·4후퇴 때 피란 내려와 1960년 데뷔했다. 1963년 영화인협회 주최 '스타탄생 코미디'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대한민국 '원맨쇼'의 일인자가 됐다. 고(故) 백남봉과는 '투맨 쇼'로도 큰 인기를 누렸다. 남보원은 실향민의 아픔을 희극의 주된 소재로 삼았다. 특히 그의 성대모사는 독보적이었다. 전쟁을 겪은 세대만이 알 수 있는 대포소리, 전투기 엔진소리, 뱃고동, 기적소리 등을 그는 진짜처럼 모사했다.

남보원은 노래도 잘 불렀다. '굳세어라 금순아'와 '불효자는 웁니다'를 수없이 부르고 또 불렀다. 떠돌이 생활의 한과 실향민의 한을 이 노래로 표출시켰다. 그의 노래는 기교보다는 애끓는 통곡과 애틋한 그리움 같은 것이 있었다. 실향민들은 그가 설과 추석 특집 무대에 오르면 처음엔 배꼽을 잡고 웃다가 끝에 그가 "어머니!"하고 외치면 약속이나 한 듯 모두 울었다. 그의 무대는 언제나 눈물바다였다. 그는 늘 사람을 울렸다. 그래서 실향민들은 그를 '웃기지만 슬픈 광대'라고 불렀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가 이 시대의 마지막 광대였다고 생각한다.

희극인의 지존, 찰리 채플린은 '나의 자서전'에서 '사람의 행운, 불행 같은 것은 하늘의 뜬 구름과 같아서 바람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썼다. 모든 실향민이 그랬듯, 그 역시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흘러가는 구름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입으로 뱃고동 소리를 낸 후,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를 구슬프게 부르며 우리와 함께 울고 웃던 광대 남보원. 그의 죽음이 서럽다.

/이영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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