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한 벌 입지 않은 맨몸으로
빈들에 서서 떨고 있는
저 엄숙한 침묵,
시린 발, 시린 몸, 웅크리고
제 몸 비벼 봄을 틔우고 있는
저 심지의 환한 불길,
내가 가만가만 그에게 다가가
살짝 귀 대어 들어 보니
벌컥 벌컥 물 마시는 소리,
그 뜨거운 생불生佛의 열기
확, 내 몸에 불을 당긴다
이영춘(1941~)
|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
언어의 홍수 속에서 지극히 절제된 언어의 파장으로 정서를 흔들어 놓는 것이야말로 현대시가 구현해야 하는 '서정적 놀라움'이 아닐 수 없다. 일상성 속에서 새롭게 출현한 시는 서정적 자각과 존재에 대한 통찰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으로 기존 질서를 배반하면서 근원적인 존재를 이해하는데 한걸음 더 나가게 만든다. 우리가 부르는 '꽃'은 학습 되어진 것으로서 어떠한 사물에 부여된 획일적인 명사에 지나지 않지만 시인이 찾아내는 사물은 이전의 사물과 다른 형태와 의미로 전환할 때 사물은 꽃과 교환되면서 고유한 꽃이 되며 시가 된다. 이 겨울을 '옷 한 벌 입지 않은 맨몸으로' 버티고 있는 한그루 나무를 이른바 '동화목冬花木'으로 보는 것. 그것은 '빈들에 서서 떨고 있는/저 엄숙한 침묵'이 피워낸 꽃으로 환원시키는 것. 거기에는 '벌컥 벌컥 물 마시는' 나무의 생명성을 들여다보는 것. 따라서 시는 나무의 '시린 발, 시린 몸, 웅크리고/제 몸 비벼 봄을 틔우고 있는/저 심지의 환한 불길'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뜨거운 생불生佛의 열기'로 자신의 '몸에 불을 당기고 있는' 당신도 '한 송이 동화목'과 다르지 않음을 성찰하게 해 준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저작권자 ⓒ 경인일보 (www.kyeongin.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