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제자 가운데 뛰어난 인물이 많았지만 당시 도학(道學)에는 안회(顔回)였고 이재(理財)에는 단목사(端木賜)였다. 이 둘에 대해 공자가 언급한 내용을 보면 정신적 가치와 물질적 가치에 대한 공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공자의 이런 언급이 있다. "안회는 거의 도(道)에 이르렀지만 자주 비었다. 단목사는 명을 받지 않았지만 재화를 늘렸는데 헤아리면 자주 들어맞았다."(回也其庶乎屢空. 賜不受命而貨殖焉億則屢中. 회야기서호누공. 사불수명이화식언억즉루중.)
누공(屢空)과 누중(屢中)에서 중(中)을 적중의 의미로 본다면 공(空)을 어떤 의미로 읽어야할지는 사실 고민이 되는 대목이다. 전통적으로 안회는 매우 가난했기 때문에 먹을 것이 자주 떨어져 쌀독이 비었다는 뜻으로 이해하였다. 그렇게 보면 안회는 정신적 가치로 볼 때 높은 경지에 있었지만 물질적으로는 가난했다는 내용으로 읽을 수 있다. 반면에 사(賜)가 명(命)을 받지 않았다는 불수명(不受命)에 대해서는 해석의 재고가 필요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재화를 불렸다고 이해하는 관점이 있다. 그런데 당시의 운명에 대한 관점은 생사나 부귀가 모두 천명에 달려있다는 생각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므로 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만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다른 관점의 해석이 필요하다. 어쨌든 자공은 주어진 자신의 현재 여건에 만족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경제상황을 예측하여 자주 들어맞는 방식으로 재화를 불려나갔다. 공자 당시는 물론 후대사람들이 공자보다 낫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자공은 공자의 강학과 생활에 필요한 많은 비용을 다 제공하였다. 자공이 그렇게 부를 늘렸던 방법이 바로 억(億)과 누중(屢中)이었다. 먼저 잘 헤아려야 하고 결과 또한 높은 확률로 예측이 가능했다(屢中).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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