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확대경]삼국시대 성벽 발굴된 오산 독산성은 어떤 성이었을까?

최규원 기자

입력 2020-02-08 17:5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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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여지도(1861년)-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奎10333)
대동여지도(1861년,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奎10333). /오산시 제공

오산의 독산성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 의해 고립됐음에도 불구하고 권율 장군의 기지로 왜군을 격파하며 기울어졌던 승기를 되찾아오게 되는 결정적 계기를 만든 전투지로 유명하다.

때문에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은 독산성이 조선시대 지어진 성곽으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독산성과 세마대지(이하 독산성) 학술 발굴조사단(이하 조사단)이 삼국시대 성곽을 최초로 확인하면서 학계와 많은 이들에게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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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산성 현황. /오산시 제공

역사적으로 독산성은 백제시대 처음 쌓은 것으로 전해지는 산성으로, 조선시대까지 운영된 것으로 알려져왔다. 해발 208m의 독산(禿山)의 산봉우리에 테뫼식으로 조성됐으며, 둘레 약 1.1㎞의 성곽에는 동서남북 4개의 성문과 1개의 암문 그리고 8개의 치(稚)가 있다.

성 내에 권율 장군의 승전 일화로 유명한 세마대(洗馬臺)는 독산성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독산성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에서 확인된다. BC 8년(온조왕 11년) 독산에 목책을 설치했고 독산(禿山), 독산성(獨山城)이라는 지역에서 삼국 간의 여러차례 전투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으나, 현재 기록에 나오는 '독산'의 위치가 어느 곳인지는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상태였다.

그러나 조사단이 발굴한 삼국시대 성벽 유적은 독산성이 조선시대 훨씬 이전부터 중요한 군사 요충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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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산성 서북쪽에서 바라본 경관 모습. /오산시 제공

조사단 관계자는 "독산성 성벽 발굴조사 결과 1970~80년대 쌓았던 복원성벽 아래에서 조선시대 후기 성벽, 조선시대 전기 성벽, 통일신라시대 성벽, 삼국(신라) 시대 성벽이 차례로 확인됐다"며 "시간적으로 1천500년 전부터 이 지역 일대를 관할하는 매우 중요한 성일 것으로 추정되며, 그 위상 또한 수원 화성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위계가 높고 역사성 또한 매우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독산성에서는 융건릉·용주사, 수원화성과 광교산이 훤히 보일 정도로 주변에 높은 산이 없는 평지 지역에 위치해 있다.

위치적으로도 한양에서 지방으로 내려가는 주요 교통로로 활용돼왔다. 대동여지도를 통한 역로(驛路)를 살펴보면 한양에서 충청·전라를 향할 때 과천~수원~진위~평택을 거쳐 남행했으며, 독산성은 그 중간지점에 위치한다.

사진8_외벽[삼국(신라)~조선) 노출 후 전경1(북에서)
오산 독산성과 세마지대 발굴현장. 외벽 삼국(신라~조선, 사진 앞쪽부터) 노출 후 전경. /오산시 제공

독산의 서쪽으로 흐르는 황구지천은 경기도 서남부의 하계망인 오산천, 진위천, 안성천과 연결돼 서해의 남양만으로 나갈 수 있는 해상 교통의 장점도 갖고 있었다.

다시 말해 독산성이 자리하고 있는 위치는 육지와 바다를 모두 연결할 수 있는 수륙양용의 지역적 특성을 갖고 있어, 경기 남부의 관문으로써 수원뿐 아니라 수도 한양 방위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며 군사 전략적으로 매우 중시됐던 것으로 보여진다.

사진9_외벽[삼국(신라)~조선) 노출 후 전경2(북동에서)
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 발굴 현장. 외벽부터 삼국(신라~조선) 성벽 모습. /오산시 제공

조사단 발굴결과 이번에 발견된 성곽은 삼국시대 6세기 후반 처음 쌓았으며, 이후 7세기 중반 대대적으로 고쳐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6세기대 성벽은 가늘고 긴 성돌을 이용했으며, 주로 독산성 내부에 있는 큰 암석을 사용했다. 이후 7세기 중반에 들어서는 독산성 외부에서 들여온 성돌을 사용했으며, 정사각형 또는 직사각형 모양으로 잘 치석(다듬어)해 빈틈없이 쌓아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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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산성 축조 및 수축과정 모식도. /오산시 제공

조사단 관계자는 "조선시대 성벽은 삼국~통일신라 시대 성벽 위에 쌓아올렸으며 조선시대 전기 성벽, 후기 성벽으로 명확하게 구분된다"며 "성벽이 잘 남아있지 않으나 토성에서 석성으로 변화시키면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독산성이 과거 어떤 역할을 했는지 다시 한 번 주목받는 계기된 것으로 발굴 성과를 평가한다.

오산시 관계자는 "연차적으로 학술 발굴조사를 이어나갈 계획"이라며 "성곽 보수 공사, 정밀안전진단, 휴게시설, 방제시설 정비 등 전반적 정비 사업과 함께 문화재를 시민들에게 돌려줄 수 있는 문화관광 콘텐츠도 개발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오산/최규원기자 mirzstar@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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