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에세이]나의 미니멀리즘 도전기

정지은

발행일 2020-02-07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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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美에 유행 신드롬 신조어 '곤도잉'
집정리 하면서 어렴풋이나마 이해
버리자니 아깝고 두자니 안쓸 물건
중고 앱 활용 '비우는 삶' 깨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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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문화평론가
미니멀리즘(minimalism) 열풍을 기억한다. 사실 몇 년 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을 때만 해도 별 관심이 없었다. '곤도잉(Kondo-ing)'이라는 신조어를 미국에 유행시키며 미니멀리즘 신드롬의 중심에 섰던 곤도 마리에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영 시큰둥했다. 곤도 마리에는 정리를 시작하기 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집과 대화를 나누는 명상의 시간을 갖고, 의뢰인에게 버릴 물건을 끌어안고 작별 인사를 하라고 시킨다. 오리엔탈리즘처럼 보이기도 하고 선뜻 이해가 잘 가지 않는 행동이었는데, 이번에 집 정리를 하면서 그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됐다.

정리를 하다 보니 버리긴 아깝고, 그냥 두자니 안 쓸 것이 뻔한 물건들이 꽤 나온다. 요즘 유명하다는 동네 중고거래 앱을 깔고 방치되어 있는 자전거부터 올려보기로 했다. 하도 안 타다 보니 바퀴 바람이 빠진 지 오래지만 상태는 괜찮다. 사진 몇 개 찍어서 싼 가격으로 올렸는데, 올리자마자 신기할 정도로 실시간으로 관심과 채팅이 쏟아진다. 그 밤에 당장 집 앞으로 오겠다는 사람까지 등장했다. 덜컥 겁이 나 제대로 가격을 올린 게 맞는지 고민스러워 게시물을 지웠다. 그러다 어차피 내가 안 쓰는 물건인데 이 돈을 받는 것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격을 좀더 올려도 되지 않을까 욕심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처음 올렸던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기로 결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하다. 가장 먼저 구매 의사를 밝힌 분과 만나기로 했다. 바람 빠진 자전거를 힘겹게 끌고 나가면서 '거래가 안 되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차를 몰고 달려오신 그분, 몇 번 만져보더니 7만원을 현금으로 주고 떠나갔다. 중고 거래인 만큼 "무르거나 환불 요청하지 않겠다"는 쿨한 약속과 함께.

연이어 판매가 성사되자 다른 사람들의 물건이 궁금해진다. 선물세트들이 유독 많이 올라와 있어 살펴보니 중고거래 앱에서 사기 가장 좋은 아이템이 명절 직후 올라오는 각종 식품 선물세트란다. 내가 원하는 품목으로 구성된 상품을 고르고 유통기한까지 꼼꼼히 확인한 후 거래 약속을 잡았다. 동네 지하철역 입구에서 접선, 물건과 현금을 교환하고 집에 돌아와 시세가 대비 50% 저렴한 가격에 '득템'한 캔들을 쌓아놓고 나니 뿌듯하면서도 비워낸 것보다 더 채워넣은 것 같아 기분이 묘하다.

물론 모든 물건이 이렇게 인기리에 팔리는 건 아니다. 올려둔 지 한참이 지났지만 거래는커녕 문의 한 건 없는 물건들도 많다. 그래도 무조건 버리는 게 아니다 보니 정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늘도 평화로운 중고나라'로 표현되는 중고거래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사는 동네 공개를 통해 부분이나마 극복했다고 해야 할까. 일단 가까운 동네 사람들끼리 내놓은 물건이고 가격도 싼 물건이 대부분이라 부담이 덜하다. 뭐 이런 것까지 내놓았나 싶은 물건도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모양인지 사람들의 취향이 다양하다는 것도 새삼 확인하게 된다.

'폐가전 무료수거 서비스'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됐다. 소형 가전 5개 이상이면 무료로 와서 가져간다. 중고 거래마켓에 내놓기도 민망하고 어떻게 버려야 할지도 난감한 오래된 토스터, 프린터기 등을 헤아려보니 마침 5개가 넘는다. 모바일로 신청하고 문 앞에 내놓으면 정해진 날짜에 수거해가는 것으로 끝이다. 현관 앞에 한 짐 가득 부려놓았던 짐들이 싹 사라져있는 걸 보니 신기하면서도 속이 다 시원하다. 물론 아름다운가게나 옷캔 같은 곳에 기부하면 연말정산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으니 편한 방법을 선택하면 된다.

처음엔 단순하게 내다 버린다고 생각하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 마음도 함께 정리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물건을 정리하다보니 그때 이 물건을 왜 사고 싶었는지, 왜 사게 됐는지, 산 후에 얼마나 썼는지, 왜 안 쓰게 됐는지… 여러 가지 기억과 함께 당시의 내가 뭐에 꽂혀 있었는지까지 떠오르기 때문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대체 왜 샀는지 이해가 안 가지만 그때는 이걸 사기만 하면 세상 누구보다 알차게 잘 사용할 자신이 있었고, 실제로 한동안 열심히 잘 쓰기도 했다. 내가 산 물건들을 살펴보는 시간은 내 경제적 능력과 욕망 사이 줄타기의 흔적을 들여다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궁극적으로 지금 나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필요하지 않은지,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할지까지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아직 미니멀리즘에 성공했다고 보긴 어렵다. 그렇게 치우고 버렸는데도 여전히 물건은 많고, 마스크나 손 세정제처럼 상황에 따라 살 수밖에 없는 물건은 생기기 마련이다. 다만 곤도 마리에의 말대로 결국 물건은 '남기느냐 버리느냐' 양자택일할 수밖에 없으니 이왕이면 최대한 버리는 쪽으로, 아니 버릴 물건이 애초에 없도록 노력하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이겠다.

/정지은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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