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나들목' 인천공항 이야기·(1)프롤로그]제비 대신 비행기 드나드는 '영종'… 세계를 잇는 공항은 운명이었다

정진오 기자

발행일 2020-02-13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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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아이클릭아트

고려시대 기록부터 '자연도'로 불려와
제비 많고 해질녘 자줏빛 하늘서 유래
이규보의 '계양망해지' 한대목 등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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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표 공항, 인천국제공항은 태초부터 비행장의 기운을 타고난 자리에 터를 잡았다.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는 예로부터 자연도(紫燕島)라 불렸다. 자줏빛 제비의 섬이란 의미다. 겨울이 지나고 봄의 소식을 물고 오는 제비는 늘 반가움의 대상이다. 

 

자연도란 이름은 고려시기에 비로소 등장한다. '고려사'나 '고려사절요'에는 주로 유배의 섬으로, 또한 왜적들이 약탈 대상으로 삼은 곳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려를 찾았던 중국 사신의 눈에 자연도는 그냥 지나칠 곳이 아니었다. 중국 송나라 때 문신 서긍(徐兢)은 1123년 바닷길 서해안 루트를 따라 개성을 방문한 뒤 중국으로 돌아가 '고려도경'이란 방대한 분량의 견문 보고서를 왕에게 올렸다. 

 

기에 자연도 이야기가 자세하다. 눈여겨볼 만한 대목도 많다. 고려시대부터 자연도는 외교적으로 무척 중요한 공간이었다. 

 

고려 제일의 문장가 이규보(1168~1241)가 계양산에서 조망한 자연도 이야기는 그의 문집에 남아 아직도 전한다. 1219년 여름부터 1220년 여름까지 1년여 동안 계양부사로 있었던 이규보의 그때 시선은 꼭 800년이 흐른 지금 어떻게 바뀌었을까.


지난 5일 오후 3시 계양산에 올랐다. 인천국제공항을 품고 있는 영종도를 바라보기 위해서였다. 

 

이번 겨울은 강추위 없이 지나간다는 얘기를 했는데 입춘이 지나자마자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한반도를 덮쳤다. 

 

인천지역도 모처럼 영하 10℃ 아래로 떨어졌다. 시야를 가리는 중국발 미세먼지를 날려버릴 절호의 기회였다. 춥지만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을 기다리던 차였다. 

 

그렇게 오른 계양산. 영종도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마침 비행기 한 대가 영종도 북쪽 하늘로 날아올랐다. 영흥도 쪽 하늘에서는 비행기 두 대가 잇따라 고도를 낮추며 영종도를 향해 다가서고 있었다.

 

인천공항이 어디인지를 비행기들은 그렇게 알려주고 있었다. 도심 속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추위를 무릅쓰고 오른 산에서는 보상이라도 해 주는 듯 훤히 펼쳐 보여주었다. 

 

저 멀리 덕적군도에서부터 영흥도, 무의도, 영종도, 삼목도, 시도, 모도, 장봉도, 강화도 등 여러 섬들이 인천 앞바다를 화려하게 수놓고 있었다. 송도와 영종을 잇는 인천대교의 우뚝한 주탑 사이에 역사의 섬 팔미도가 자그맣게 살포시 내려앉아 있었다.

"처음 만일사(萬日寺)의 누대(樓臺) 위에 올라가 바라보니, 큰 배가 파도 가운데 떠 있는 것이 마치 오리가 헤엄치는 것과 같고, 작은 배는 사람이 물에 들어가서 머리를 조금 드러낸 것과 같으며, 돛대가 가는 것이 사람이 우뚝 솟은 모자를 쓰고 가는 것과 같고, 뭇 산과 여러 섬은 묘연하게 마주 대하여, 우뚝한 것, 벗어진 것, 추켜든 것, 엎드린 것, 등척이 나온 것, 상투처럼 솟은 것, 구멍처럼 가운데가 뚫린 것, 일산처럼 머리가 둥근 것 등등이 있다. 사승(寺僧)이 와서 바라보는 일을 돕다가 갑자기 손가락으로 섬을 가리켜 말하기를, "저것은 자연도(紫燕島)·고연도(高燕島)·기린도(麒麟島)입니다"하고, 산을 가리켜 말하기를, "저것은 경도(京都)의 곡령(鵠嶺), 저것은 승천부(昇天府)의 진산(鎭山)·용산(龍山), 인주(仁州)의 망산(望山), 통진(通津)의 망산입니다"하며, 역력히 잘 가르쳐 주었다."

이규보의 작품을 모은 '동국이상국집'에 전하는 '계양망해지(桂陽望海志)'의 한 대목이다. 

 

제목처럼, 계양산에 올라 바다를 보면서 느낀 감흥을 적었다. 지금은 만일사의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드넓은 갯벌을 매립해 청라신도시를 건설하고 수도권쓰레기매립지를 조성한 탓에 바다가 좁아졌다.

 

큰 배도, 파도도 보이지 않는다. 돛대를 단 작은 배는 더더욱 볼 수가 없다. 스님이 가리켰다는 자연도에는 제비 대신 비행기가 드나든다. 고연도는 어떤 섬을 말하는지 알아낼 수가 없다. 

 

다만, 기린도는 북한 땅인 황해도 옹진군 기린도를 일컫는 게 아닌가 싶다. 연평도보다도 멀리 있는 창린도 옆 기린도가 계양산에서 눈에 잡혔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 시절에는 매의 눈처럼 멀리 볼 수 있다는 몽골인과 같은 놀라운 시력을 가져서 거기까지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800년 세월을 지나는 동안 인간은 하늘도 탁하게 했지만 스스로의 눈도 참으로 많이 퇴화시켰다. 눈앞의 이익만 좇다가 다들 근시안이 되어 버렸다.




송나라 사신대접·군례의식 장소 활용
당시 경원정·제물사 필수코스로 꼽혀
이곡의 詩, 소금생산지로서 일면 묘사


인천국제공항은 세계 각국 190여 개 도시와 연결되어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외국인이 들락거리는 외교의 최일선 공간이기도 하다. 12세기에도 그랬다. 송나라 사신 서긍 일행은 개성 도착 직전인 1123년 6월 9일 영종도(자연도)에 들렀다. '고려도경' 속 '자연도' 항목을 보자.

"산에 의지하여 관사를 지었는데, 방(榜)에 '경원정(慶源亭)'이라고 하였다. 경원정 곁에는 막집(幕屋) 수십 간을 지었고 주민들의 초가집도 많다. 그 산의 동쪽 한 섬에 날아다니는 제비가 많기 때문에 그렇게 명명한 것이다."

제비가 많기 때문에 섬의 이름에 제비를 넣었다는 얘기인데, 그러면 자줏빛은 어찌 나온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해질녘 영종도의 하늘빛을 말함이리라. 영종도의 석양은 유난히 붉다 못해 자줏빛이다. 그때 나는 제비는 영락없는 자줏빛깔이다. 

 

옛 사람들은 지명을 정하는 데 있어서 참으로 운치가 있었다. 자줏빛과 관련해 의미 있는 기록이 '고려도경'에 또 전한다. 고려 정부는 외국 사절들에게 자연도에서 군부대 사열 같은 군례(軍禮) 의식을 보여주었다. 

 

서긍은 이 부대의 지휘자를 '육군 산원 기두(六軍 散員 旗頭)'라 칭했으며, 자연도에서 처음 보았다고 썼다. 

 

군중(軍中)의 총령자(總領者)인 이 사람은 다리 모양의 뿔이 달린 모자를 쓰고 자주색 무늬의 비단옷을 입었다고 표현했다. 자줏빛 제비의 섬에서 자줏빛 군복을 입은 군대 인솔자라니. 자줏빛과 영종도의 관계가 새삼스럽다.

계양산에서본영종도
계양산에서 바라본 영종도가 손에 잡힐 듯 눈 앞에 펼쳐져 있다. 지난 5일 오른 계양산 정상에서 바라본 영종도는 인천국제공항을 품고 그 품에서 막 떠나 힘차게 이륙하는 여객기가 눈앞에 펼쳐졌다.

태초부터 비행장 기운 타고난 터일까
오늘날 인천공항 들어선 '외교 최일선'
옛모습 희미하지만 190여개 도시 연결

고려시대에는 송나라를 비롯한 외국 사신들에게 음식 접대가 극진했던 모양이다. 

 

음식은 10여 종이나 마련했고, 국수가 먼저 나왔고 해산물은 무척 진기했다고 서긍은 기록했다. 그릇은 금과 은을 많이 썼으며 청색 도기(고려자기로 보임)도 섞여 있었다고 했다. 

 

나무로 만들어 옻칠을 한 쟁반이나 소반을 썼다고 한다. 사신 대우가 무척 융숭했다. 그 가운데서도 원칙이 있었다. 

 

딱 3일 동안만 음식을 제공했으며, 풍랑이 일어 배가 떠나지 못하더라도 3일이 지난 뒤에는 음식을 더 이상 갖다 주는 일이 없었다. 고려의 외교 수칙이 세세한 부분까지 매우 엄격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영종도에는 경원정과 함께 제물사(濟物寺)라는 절도 있었다. 제물사는 송나라 사신들이 꼭 방문해야 하는 필수 코스였다. 

 

서긍 이전에 송나라 사신 중에 송밀(宋密)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고려를 방문했다가 자연도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제물사에서는 이 송밀의 제사를 모셨던 모양이다. 

 

그 뒤로 고려에 온 송나라 사신들은 꼭 자연도 제물사에 들러 송밀의 무덤에 절을 올리고, 제사를 받드는 승려들에게 식사를 베풀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고 한다. 자연도가 대중국 교류의 핵심 거점이었던 셈이다. 지금의 인천공항처럼.

16세기 조선 중기의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자연도를 설명하면서, 고려 후기 문신 이곡(李穀, 1298~1351)의 시를 소개하고 있다.

"가다가 자연도를 지나며, 삿대를 치고 한 번 한가하게 읊조린다. 갯벌은 구불구불 전자(篆字) 같고 돛대는 종종 꽂아 비녀와 같도다. 소금 굽는 연기는 가까운 물가에 비꼈고, 바다 달은 먼 멧부리에 오른다. 내가 배 타고 노는 흥이 있어 다른 해에 다시 찾기를 약속한다."

이곡의 시를 통해 나타난 자연도는 경원정과 제물사라는 외교적 공간 이외에도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한 축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바로 소금 생산지였다는 점이다. 

 

소금은 전시와 같은 비상상황에는 쌀값과 맞먹는 가치를 띤다. 이순신 장군도 임진왜란 시기 염전을 무척 귀하게 다루고 군부대 소금 배급에 공정을 기했다.

이곡의 시에 비춰보면 영종도에는 고려 시기에 대규모 염전이 있었다. 

 

물론 당시에는 요즘 같은 천일염 시스템이 아니라 바닷물을 솥에 넣고 끓이는 자염(煮鹽) 방식이었다. 그걸 소금 굽는다고 했다. 땔나무가 엄청나게 들어갔다. 

 

그리하여 자염 생산은 바닷가에 있으면서 산림이 울창한 곳에서 이루어졌다. 

 

수도와 가깝고 나무가 많은 영종도가 소금 생산지로 제격이었던 모양이다. 지금 인천공항은 대한민국 최대의 경제적 가치를 뽐내는 공공재로 성장했다.


글/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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