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책장과 셰프

이진호

발행일 2020-02-13 제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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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방들 인테리어·컴퓨터 높은 사양 '한계'
젊은 고객 입맛맞는 메뉴로 영업전략 바꿔
'책장 마케팅'이 미국 출판업계 살린것처럼
요즘 '업계매출' 요리사 음식솜씨에 달렸다


이진호
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 시기에 난데없이 '책장(冊欌)' 유행이 일어났다. 경기 불황으로 뉴욕 인쇄 출판업자들이 도산 직전에 몰린 상황에서 책장이 유행했다는 것은 의외였다. 이런 유행의 배경에는 당시에는 치밀하게 계획된 '선전 활동(프로파간다)', 지금으로 표현하면 노련한 마케팅 전략이 있었다.

책장 유행을 일으킨 주인공은 전 세계 수많은 언론과 지식인들이 'PR(Public Relations, 홍보)의 아버지'로 기리는 에드워드 버네이스(Edward Bernays, 1891~1995)다. 버네이스는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조카이기도 하다. 버네이스는 홍보를 과학과 산업으로 정립했으며 1923년 뉴욕 대학교에서 최초로 '홍보'라는 교과 과정을 가르치기도 했다. 버네이스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홍보 지침인 '프로파간다(propaganda)'를 썼으며 나치 선전 활동을 도와달라는 히틀러의 요청을 거부한 일화로도 유명하다.

출판업 자체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뉴욕의 주요 출판업자들의 구조 요청을 받은 버네이스는 "책장이 있는 곳에 책도 있게 되죠"라고 했다고 한다. '생각을 빼앗긴 세계'의 저자인 미국의 저널리스트 프랭클린 포어(Franklin Foer)는 "책장은 대부분의 미국 가정에 생소한 물건이었으며 제이 게츠비 같은 부유층에게나 어울릴만한 사치품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책의 내용을 빌리면 버네이스는 건축가들을 설득해서 실내장식 설계에 책장을 포함하게 했고 '아름다운 집', '미국 가정', '가정의 동반자' 같은 잡지들에 등장하는 기사를 통해 붙박이 책장을 알리게 했다. 포어는 "책장은 분명 장식품이었지만 단순한 장식품에 그치지 않았다. 집안에 책이 있다는 건 사회적 출세를 의미했다"며 "책은 지적 능력이 필요한 직업을 갖고 신분이 상승하는 전문직 계층이라는 표시였고 구매력을 갖춘 자들의 소비재였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책장의 보급은 출판업계에 새롭게 활기를 불어넣었다. 책장 구입과 더불어 책을 모으고 진열하는 것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얼마 전 막내아들한테 'PC방 맛집' 얘길 들었다. 인덕션, 기름 튀김기, 전기밥솥, 에어프라이어 등 화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전기제품이나 조리용 자판기를 이용한 음식을 제공하는 점포가 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비빔면에 튀긴 삼겹살을 올린 '삼겹살&비빔면', 짜장 라면에 치즈와 달걀부침을 토핑한 '짜치기', 불닭볶음면에 치즈와 베이컨을 얹은 '불치베', 스팸과 마요네즈와 함께 밥을 내오는 '스팸마요' 등 기성세대에게는 낯선 메뉴들이다. 음료수는 에이드에 바카스를 섞은 '바카스에이드'가 유행이라고 한다.

PC방의 매출은 컴퓨터를 사용하는 만큼의 시간과 직결된다. 업주의 입장에선 손님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컴퓨터를 사용할수록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고급 인테리어, 높은 컴퓨터 사양으로 손님을 유치하는 데 한계를 느낀 PC방 업주들은 젊은 고객층의 입맛에 맞는 음식 메뉴로 영업전략을 바꾸기 시작했다. 최근 PC방 프랜차이즈 업체마다 고급스럽고,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강조하는 마케팅을 벌이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자체적으로 셰프를 고용하거나 조리가 간편한 음식을 대량생산하기 위해 식품 공장까지 차린 업체까지 등장하고 있다. 100여 년 전 버네이스의 책장 마케팅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 미국 출판 업계를 살린 것처럼 현재의 PC방 업계의 매출은 셰프의 요리 솜씨에 달렸다. 어쨌든, 고유의 상품이나 영업방식만으로 매출을 기대하던 시대가 지난 것만큼은 확실하다.

/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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