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에세이]혐오라는 바이러스

정한용

발행일 2020-02-14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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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증오하면 증오로 '부메랑'
중국에서 '코로나19' 시작됐지만
중국인 자체가 바이러스는 아냐
역지사지만이 피해 막는 지름길
이해와 관용으로 극복해 나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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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용 시인
엊그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 네 개 부문을 휩쓸었다. 비영어권 영화가 하나 받기도 어려웠던 전례를 깬, 그야말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영화 자체에 대한 찬사는 물론 봉 감독의 수상 소감도 주목을 받았다. 그는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유머러스하게 소감을 말했다. 그런데 남이 잘 되는 걸 못 보는 놀부 심보는 어디에나 있는지, 그의 어투에 딴죽을 거는 어느 미국인의 SNS 포스팅이 알려져 우리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그 미국인은 '영어와 한국어를 섞는 말투가 미국을 파괴하고 있다'고 썼다. 대부분 언론이 봉 감독의 재치에 열광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적대적 태도이다.

혐오는 또 다른 혐오를 낳는다.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 의식은 뿌리 깊이 박혀있다 어떤 계기가 되면 슬그머니 머리를 들곤 한다. 꽤 오래전 미국 아이오와 대학의 국제창작 프로그램에 참석했을 때 일이다. 지역 주민이 여는 환영 파티에 나를 포함해 각국에서 온 작가 이십여명이 참석했다. 우리를 초대한 주민 중에는 중국계 미국인도 있어, 나는 같은 동양인이라는 사실에 너무나 반가워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나이 지긋한 그 부인은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마치 징그러운 벌레라도 본 듯 얼굴을 찡그리며 돌아섰다. 백인으로부터 평생 받았을 인종차별을, 자기보다 열등하다고 여기는 한국인에게 분풀이로 퍼붓는 순간이었다.

이런 혐오는 해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가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퍼져가고 있다. 현재로선 언제 이 역병이 수그러들지 예측하기 어려운 듯하다. 각국의 대응이 조금씩 달라, 어떤 나라는 중국인 입국을 전면 통제하는가 하면 어떤 나라는 선별적으로 허용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후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중국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막지는 않고, 대신 바이러스가 유입되지 않도록 나름 최선의 방역대책을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SNS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 한 젊은이가 중국인을 멸시하는 글귀와 대통령을 '재앙'이라고 적은 팻말을 들고 일인시위를 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준다.

다시 말하지만 혐오는 혐오를 낳는다. 한 미국인의 억지 주장에 봉 감독이 말투를 바꿀 리도 없고, 한국인이 갑자기 모두 영어를 잘 하려고 노력할 리도 없다. 오히려 그 '영어 중심주의'에 우리가 분개할 뿐이다. 또 그 중국계 미국인의 한국인 멸시가 중국이 한국보다 우월하다는 표시이거나 자신이 백인 그룹으로 편입되는 계기가 될 리가 없다. 우리가 소위 '중화주의'에 더 반감을 느낄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입장을 바꿔 지금 우리가 중국인을 '더러운 바이러스'라고 부른다고 해서 중국인이 한국을 깨끗한 나라로 동경할 리가 없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증오는 증오를 낳고 혐오는 혐오로 되돌아올 뿐이다.

누군가를 싫어한다면 거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선 영어만 쓰라고 주장한 사람이 한국에 온다면 그는 한국어를 사용할까? 우리도 그에게 "너도 한국에 왔으니 한국어만 쓰라"고 요구한다면 얼마나 웃기겠는가. 그 노부인도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서 인종차별을 당해온 사람들, 예컨대 히스패닉계나 아프리카계 사람들을 보아왔을 것이다. 그런데도 자기보다 처지가 어려운 사람을 멸시한다면 그 역시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되는 것 아닐까? 언제든 처지는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타자를 혐오하는 건 자신을 '혐오의 바이러스'라고 고백하는 것과 같다. 중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시작되었지만, 중국인 자체가 바이러스는 아니다. 더구나 SNS상의 그 시위꾼이 목적하는 바, 현 정부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비판이 아닌)은 그다지 효과가 없다. 현실적으로 중국을 봉쇄했을 때 더 큰 손해를 누가 볼 것인지는 대충 계산을 해도 답이 뻔하기 때문이다. 역지사지만이 혐오라는 바이러스를 막는 지름길이다. 쉽게 전염되는 혐오 바이러스, 이를 극복하는 길은 내가 그 혐오의 대상이 되어 보는 것이다. 그러면 이해와 관용은 저절로 생겨난다.

/정한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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