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만난 꽃 중 가장 작은 꽃
냉이꽃과 벼룩이자리꽃이 이웃에 피어
서로 자기가 작다고 속삭인다.
자세히 보면 얼굴들 생글생글
이빠진 꽃잎 하나 없이
하나같이 예쁘다.
동료들 자리 비운 주말 오후
직장 뒷산에 앉아 잠깐 조는 참
누군가 물었다. 너는 무슨 꽃?
잠결에 대답했다. 꿈꽃.
작디작아 외롭지 않을 때는 채 뵈지 않는
(내 이는 몰래 빠집니다)
바로 그대 발치에 핀 꿈꽃.
황동규(1938~) |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
꿈을 꾸게 하는 잠에게 우리는 빚진 것이 많다. 오래 산다는 것은, 이미 감당하지 못하는 채무가 있다는 것. 잠이라는 빚을 지고 있는 동안에도 우리는 그 꿈을 기억하지 못해도 꿈을 꽃 피우는 시간이다. 꿈이 인생의 무게와 부피에 맞는 꽃을 피게 하고 있으니. 눈을 감고 있는 사이 몰래 온 눈처럼 당신을 하얗게 덮고 있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지 않던가. 그렇다고 꿈이 작다고 꿈을 꾸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이른 봄 '이웃에 피어' 하얀색 꽃을 피우는, '당신께 나의 모든 것을 드립니다'라는 꽃말을 가진 냉이꽃과 '기쁜 소식'이라는 꽃말을 가진 벼룩이자리꽃. 구석자리 어딘가에서 새순을 내고 자라나는 이 작은 것들을 '자세히 보면 얼굴들 생글생글 이빠진 꽃잎 하나 없이 하나같이 예쁘질' 않던가. 슬프고 고단한 인생의 가시밭길을 걸어온 당신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바로 그대 발치에 핀 꿈꽃'을 볼 수 있으니. 그만큼 행복한 빚이 또 어디 있겠는가.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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