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줌인]'친일파의 공덕비는 왜 누워 있을까' 인천부사 박제순 공덕비 이야기

김민재 기자

입력 2020-02-22 18: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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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인천시 미추홀구 관교동 인천향교 입구에 지금의 인천시장 격인 역대 인천부사(府使)를 기리는 공덕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이중 이가 빠진 것 같이 터만 남은 곳이 '을사오적' 박제순의 공덕비 자리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독립운동 100주년이던 지난 2019년 인천에서는 조선말기 인천부사를 지낸 '을사오적' 박제순(1858~1916)의 공덕비를 어떻게 처리할지가 뜨거운 이슈였다. 박제순의 공덕비는 해방 60주년이던 2005년 친일파에 대한 기념 논란이 일어 철거됐고, 이후 15년 동안 인천도호부관아 재현건물 담장에 방치돼 왔다. 경인일보 취재로 박제순 공덕비의 처치가 새로운 논란거리가 됐다. "그대로 둬야 한다"거나 "다시 세워서 안내판을 설치해 시민에 알려야 한다", "시민이 밟고 다닐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등의 여러 의견이 제시됐다. 인천시는 결국 오는 3월 1일에 맞춰 박제순의 공덕비를 원래 자리로 옮기되 눕혀 놓고 안내판을 설치하기로 했다. 아픈 역사도 역사인 만큼 기억에서 없애지는 말고 '반면교사'로 삼자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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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숭배 논란으로 2005년 철거된 박제순의 공덕비가 11일 오후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도호부청사 담장에 14년째 부직포로 덮인 채 방치되어있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행부사박공제순영세불망비(行府使朴公齊純永世不望碑)'

지금의 인천시장이라 할 수 있는 부사를 지냈던 박제순의 공덕비에 새겨진 글자다. 인천시민들이 박제순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의미다. 그는 1905년 외부대신으로서 이완용과 함께 을사늑약 체결을 주도한 '을사오적' 중 한 명이다. 제2차 한 일협약인 을사늑약으로 일본은 한국의 외교권을 강탈했다.

그는 앞서 1888년 5월부터 1890년 9월까지 2년 4개월 동안 인천부사를 지냈고, 1891년 8월 인천에 그의 공적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졌다. 당시에는 마을 주민들이 관행처럼 전직 부사의 공덕비를 마을 입구나 고개에 세웠다고 한다. 옛 인천도호부관아가 있던 인천 문학동, 관교동 일대에는 과거 부사들의 공덕비가 모두 18개 있는데 여기에 바로 박제순도 포함돼 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공덕비는 1970년대 한 곳에 모여 인천향교 앞 마당에 비석군을 이뤘다.

박제순의 공덕비는 2005년 12월 '친일파의 공덕을 기리는 것이 적절하냐'는 경인일보 보도로 적절성 논란이 일면서 전격 철거됐다. 지역사회의 충분한 합의를 거치기도 전에 인천시는 장비를 동원에 이 뽑듯이 박제순 공덕비를 철거했다. 그래서 지금 인천향교 앞의 비석군에는 17개의 공덕비 밖에 없다. 이 빠진 잇몸처럼 빈 자리 한 곳이 박제순 공덕비가 있던 곳이다.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던 지난해 경인일보는 박제순의 공덕비가 어디에 있는지 추적했고, 인천향교 옆에 있는 인천도호부관아 재현건물 담벼락 아래 방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부직포에 덮이고 밧줄에 묶인 채 담벼락 아래 있었다. 건물을 관리하는 인천시조차도 박제순 공덕비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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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잔재 논란으로 지역여론을 들끓게 한 박제순 공덕비가 15일 철거되고 있다.

■아픈역사도 역사다

박제순의 공덕비가 철거 후 대책 없이 담벼락에 방치됐다는 보도가 나가자 지역사회와 역사 학계에서 논란이 일었다. 담벼락 아래 그냥 둘 수는 없다는 공감대는 있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명쾌한 답을 내지 못했다.

지역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담벼락으로 옮겨놓은 것도 역사의 한 과정이니 그 자리에 두고 대신 친일파 박제순의 공덕비임을 알리는 안내판을 세우자는 의견이 제시됐다. 원래 자리로 옮겨놔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고, 인천시립박물관 등 제3의 장소로 옮기자는 의견도 있었다.

박제순의 공덕비를 밟고 다닐 수 있게 하자는 제안도 있었다. 바닥에 눕히고 발판으로 써 친일파를 단죄하자는 의도였다. 아예 부수어 버려야 한다는 급진적인 제안도 나왔다.

인천시는 이런 의견 수렴을 거쳐 최종적으로 원래 자리인 비석군으로 옮겨 놓되, 별도의 공간에 눕혀 놓기로 했다. 그리고 '단죄문'이 적힌 안내판을 만들어 이 비석의 주인이 누구이고, 왜 눕혀 있는지를 알리기로 했다. 인천부사를 지낸 박제순이 친일파였다는 사실을 알려 반면교사로 삼겠다는 취지다. 살아있는 역사 교재로 활용하겠다는 거다. 인천시는 독립운동 101주년인 올해 3월 1일 박제순 공덕비를 옮길 예정이다.

인천시는 또 역대 인천부사를 기리는 의미로 지냈던 도호부대제를 폐지하기로 했다. 역대 부사 중에 친일파와 탐관오리가 일부 있기 때문에 역시 부적절하다는 논란이 일었다. 도호부대제는 임금이 역대 왕을 기리기 위해 했던 종묘제례를 딴 것인데 역사 고증이 부족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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