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나들목' 인천공항 이야기·(6)]바다위 공항

20년간 손톱만큼 내려앉은 지반… 일본이 부러워한 우리 기술

정운 기자

발행일 2020-03-19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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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부터 1999년까지 인천공항 부지를 항공촬영한 사진. 인천공항 매립이 진행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첨단공법 과시 영종도 대공사

1992년부터 공항면적의 82% 매립 공사
200만대 착륙 불구 예상침하 절반 안돼
11m 내려간 '日 간사이공항 섬'과 대조

'4개의 섬' 생활권 묶여… 인근섬도 변화
"교통환경 나아졌지만 교류기회는 줄어"

'인천국제공항, 일본을 부끄럽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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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사카에 있는 간사이국제공항 지반은 건설 당시보다 11m 이상 내려앉았다.

 

간사이공항은 육지에서 5㎞ 떨어진 바다를 매립해 조성한 인공섬 위에 건설됐으며, 1994년 개항했다. 

 

매립 공항이라는 점 때문에 침하는 설계 때부터 예상됐으나, 침하 속도와 규모가 생각보다 훨씬 크다. 

 

예상대로라면 50년에 걸쳐 진행될 침하 폭이 조성 6년 만에 이뤄졌다. 속도는 더뎌졌으나 지금도 매년 침하가 이뤄지고 있다.

인천국제공항도 바다를 메워 조성됐다. 간사이공항의 사례 때문에 인천공항도 부지 선정 때부터 개항 때까지 지반 침하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김포공항을 대체하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신공항 부지로 인천 영종도가 선정된 것은 1990년 6월 14일이다. 

 

설계를 거쳐 1992년 11월 1단계 부지조성공사가 시작됐다.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 바다를 메우는 공사가 뼈대였다. 인천공항 전체 부지면적 5천619만8천600㎡ 중에서 해상면적은 82%에 해당하는 4천600만㎡에 달했다.

 

특히 활주로, 계류장, 관제탑 등 인천공항 주요 시설들은 모두 해상 부분에 위치하는 것으로 설계됐다.

공항은 수백 명의 승객을 태운 항공기가 뜨고 내리는 만큼, 큰 하중을 이겨낼 수 있도록 견고해야 한다. 하지만 인천공항이 해상을 매립해 들어선다는 이유로 지반 침하 주장이 불거졌다. 

 

특히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환경파괴와 지반침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2000년 1월, "공사가 시작된 92년부터 시민사회단체들은 '갯벌을 매립해 공항을 건설했을 때 과연 첨단공법을 동원한다고 해도 부등침하를 막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었다"며 "영종도 공항은 너무나 넓은 면적에 두터운 뻘층이 다양한 양상으로 깔려 있기 때문에 예측하지 못한 결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는 어떨까. 인천공항은 개항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일각의 우려처럼 지반 침하 등의 문제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1991년부터 2020년 2월까지 인천공항 활주로 누적 침하량은 0.042~2.9㎝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이는 인천공항 토목 설계 회사가 예측한 침하 폭 7.5㎝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규모다. 20년이 흘렀지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안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유도로와 계류장의 침하량도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인천공항 부지조성 공사 현장. /인천국제공항공사 제공

항공기의 무게는 보통 승객과 화물까지 더하면 200~300t에 달한다. 

 

그렇게 무거운 항공기가 시속 200㎞ 넘는 속도로 하강하다 굉음과 함께 활주로에 바퀴를 붙인다. 2001년 개항부터 인천공항 활주로에 내린 항공기는 총 200만대다. 이륙까지 포함한 운항횟수는 400만회를 넘었다.

인천공항의 안전성은 침하가 급격히 이뤄지는 일본 간사이공항과 비교되고는 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최석인 연구위원은 "간사이공항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지반이 침하하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며 "개항 6년 만에 여객빌딩 주변 지반이 12m 침하되고, 다른 곳도 평균 11m 가라앉아 '부등침하'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인천공항 건설 시에도 이러한 침하의 우려가 있었으나 침하와 관련한 아무런 문제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다.

설계업체인 (주)유신의 최인걸 인천지사장은 인천공항 설계와 감리를 맡아 1995년부터 2001년 인천공항 개항 때까지 기술본부장을 맡았고 그 현장에 있었다.

최 지사장은 "인천공항은 침하를 막기 위해 지반조사 등을 정밀하게 진행했고, 각 지질의 성질 등을 파악해 지반 침하를 막기 위한 첨단 방법을 동원했다"며 "안전하면서도 세계적인 공항으로 자리 잡은 모습을 보면 지금도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인천공항 조성 경험을 일본에서 소개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2000년 일본 사가대학교에서 열린 지반공학 국제심포지엄에서 인천공항 사례를 발표했다. 

 

그는 "일본인들이 인천공항의 건설 기술에 대해 감탄했다"며 "간사이공항 침하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인 학자들이 부끄럽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했다.

#1천년의 인천 해상매립 역사

고려 강화도 천도후 식량확보 위해 메워
김구, 젊은시절 일제 인천항 축조 동원도
월미도·송도·남동·주안산단 등 '옛 바다'


인천공항 입지 선정부터 안전성 우려가 제기된 만큼, 부지 조성 단계부터 남다른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지반조사는 부지조성구간 전체를 대상으로 2천300개소에서 시추조사를 진행했고, 3만2천212회의 현장시험과 2만7천267회의 실내시험을 거쳤다. 

 

연약지반을 강화하기 위해 강관파일 3만2천여 개를 박았다. 강관파일은 일렬로 세우면 1천682㎞에 달한다. 서울과 부산을 2차례 왕복할 수 있는 길이이다.

인천공항 건설을 위해 메워야 하는 바다는 만조 시 평균 수심이 1~2m로 얕았다. 그 규모는 여의도 면적의 13배에 해당한다. 이 너른 바다를 메우기 위해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에 총 길이 17.3㎞의 방조제를 쌓았다. 

 

방조제로 막은 바다에 5m 두께로 1억8천만㎥ 토사를 부어 부지를 조성했다. 토사는 신불도와 삼목도의 산과 용유도 오성산을 깎아 마련했다

 

이 때문에 100m를 넘던 이들 산의 높이는 절반 이하로 낮아졌다. 부족한 토사는 인근 바다에서 채취했다.


인천은 바다 매립과 관련해서는 1천년의 경험을 갖고 있는 특이한 이력의 도시이다. 

 

그동안 꾸준히 바다를 메워 도시를 확장·발전해 왔다. 고려시대부터 바다를 메웠고, 그 땅은 농경지로, 공업단지로, 신도시로, 공항과 항만으로 활용되어 왔다.

고려시대 강화도는 간척사업을 통해 농경지를 만들었다. 몽골의 침입으로 수도가 개성에서 강화도로 이전됐고, 강화에 급격한 늘어난 주민들의 식량과 군량미를 확보하기 위해 바다를 매립한 것이다.

 

'고려사'에는 임금 고종이 몽골 침입 20여 년 뒤인 1256년 2월, 매립을 지시했다는 얘기가 실려 있다. 

 

"제포(梯浦)와 와포(瓦浦)에 둑을 쌓아 좌둔전(左屯田)으로 삼고, 이포(狸浦)와 초포(草浦)는 우둔전(右屯田)으로 삼도록 하라"는 내용이었다. 

 

고종은 매립을 위한 인력 동원 방식과 자금 조달 방안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바다를 매립해 생긴 땅은 농경지로 활용했다. 이후에도 매립은 이어졌다. 

 

조선시대에는 강화 석모도와 송가도를 이어 매립지가 만들어졌다. 현재 인천 지도를 보면 매립지가 도시 전체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알 수 있다.

 

인천 중구 월미도는 소월미도와 합쳐졌다. 일제강점기 때 김구는 인천 앞바다를 매립해 만든 인천항 축조 공사에 동원됐다. 인천 경제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남동국가산업단지, 주안국가산업단지도 과거엔 소금을 만드는 염전이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쓰레기장인 수도권매립지, 각종 국제기구와 글로벌 기업들이 운영되고 있는 송도국제도시도 바다 위에 세워졌다. 인천의 주요 시설 다수가 매립지 위에 조성된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인천공항 건설을 위해 방조제를 쌓고 바다를 막는 '물막이'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제공

인천공항 조성을 위한 바다 매립은 생활상의 변화를 가져왔다. 영종도와 용유도 등 각 섬에서 생활했던 주민들은 한 생활권으로 묶이게 됐다. 

 

염전 등 바다와 관련된 직업이 대부분이었던 섬마을은 '공항 도시'로 바뀌었다. 이는 주변 지역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영종도 서북쪽에 위치한 장봉도와 신도, 시도, 모도 주민들의 생활 방식이 크게 바뀌었다. 인천공항 조성 공사가 시작되기 전 이들 섬 주민들은 뭍으로 가기 위해 탄 배는 연안여객터미널이 종착지였다. 

 

육지에서 섬으로 들어올 때는 그 반대였다. 이 배는 세어도, 신도, 시도, 모도, 장봉도 등 여러 섬을 거쳤고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 바다를 가로질렀다. 한 번 운행하는 데 2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됐다.

영종도와 용유도가 매립되면서 이 뱃길을 이용할 수 없게 됐고, 연안부두보다 가까운 곳에 삼목선착장이 조성됐다. 삼목선착장은 매립으로 영종도와 합쳐지기 전 삼목도 자리다. 

 

거리가 가까워진 만큼 배 타는 시간은 30분으로 줄었다. 배 운항횟수도 기존엔 하루 1차례에 불과했으나 16차례로 늘어났다. 교통 환경이 나아졌다고 할 수 있지만, 연안부두 등 기존에 배를 타기 위해 들렀던 지역과는 왕래가 줄어들었다.

장봉도 주민 박광국 씨는 "이제는 장봉도 주민들이 연안부두를 갈 이유가 없어졌다. 생활 권역이 바뀌게 된 것"이라며 "과거엔 선착장에서 주민들과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지금은 차에 탄 채로 배에 오르기 때문에 주민들과 교류하는 풍경은 없어졌다"고 했다.

인천공항 건설은 주민들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와 함께 과거 삶의 모습을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도 됐다. 인천 삼목도와 신불도 등에서는 신석기 시대 유물이 출토됐다. 

 

인천공항의 건설을 계기로 문화재 조사가 진행됐다. 1차 발굴조사는 1995년 9월부터 1996년 9월까지 진행됐다. 

 

그 결과 삼목도에서 신석기 후기로 추정되는 유물이 출토되는 등 서해 연안 도서 지역의 선사 문화를 알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영종도 열병합발전소 예정지와 용유도 지역에서 진행된 2차 발굴조사에서도 빗살무늬 토기 등이 발견됐으며 현재까지 발굴된 유물만 모두 1만여 점에 이른다. 현재도 발굴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영종역사관 김연희 학예사는 "인천공항 건설을 계기로 진행된 유물 조사 결과 영종도는 국내 최대 신석기 유물이 출토됐다. 운서동 한 지점에서 유물이 58기 나왔고, 이는 지금까지 조사된 서울 암사동 유적(30기), 안산 신길 유적(24기), 시흥 능곡 유적(26기) 등과 비교해도 월등히 많다"며 "유적이 만들어진 시기도 전기 신석기 시대로서 한반도 신석기 시대 주거문화 연구를 위한 표준 유적으로 꼽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운기자 jw33@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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