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막히는 방호복은 일상… "견뎌내자" 환자와 주고받는 위로

가까이서 본 안성병원 의료진

배재흥 기자

발행일 2020-03-23 제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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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오전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 코로나19 격리병동 음압병실에서 의료진들이 환자의 흉부를 촬영하고 있다.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무장'후 격리병동 출입전 "파이팅"
장례지도사까지 매일 방역 구슬땀
격리 생활 길어져… 서로가 의지

병원서 숙식… "정신적 피로 누적"
"공공의료 역할 중요 철저 준비를"

처음에는 모든 게 낯설었다고 한다. 코로나19 전담병원 의료진이 된다는 사실에 조금의 두려움도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우주복으로 불리는 '레벨D 방호복'을 입는 방법부터 하나하나 배우기 시작했다.

 

의사와 간호사부터 물리치료사, 방사선사, 치과위생사까지 병원 직원에게는 저마다의 '책임'이 주어졌다. 그로부터 한 달. 낯선 현실은 방호복이 평상복처럼 느껴질 만큼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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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팀 소속 직원들이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격리병동 소독을 하고 있다.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 코로나19 최전선에 선 사람들


지난 20일 오전 9시께 안성병원 4층 병동. 환자가 있는 격리병동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가 시작됐다. 직원들은 능숙한 솜씨로 전신을 감싸는 방호복과 마스크, 고글 등을 차례로 착용했다. 

 

'파이팅!', 동료들의 짤막한 응원도 이어졌다. 이중으로 분리된 문을 하나씩 열고, 환자들이 있는 공간으로 발을 내디뎠다.

격리병동에 들어온 직원들이 하는 일은 다양했다. 완치 판정을 받은 환자의 퇴원을 돕기 위한 간호사와 검체 채취를 하는 임상병리사, 흉부 엑스레이를 찍는 방사선사가 여러 병실을 분주히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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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병동 안에서 일과를 끝마친 간호사가 땀에 흠뻑 젖은 채로 방호복을 벗고 있다.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곧이어 '빨간 고무장갑' 부대가 등장했다. 병동 복도와 병실 안 소독을 맡은 환경팀 소속 직원들이었다. 

 

약무보조원, 장례지도사 등 병원 직원들이 본연의 업무를 뒤로한 채 매일 오전과 오후 한 번씩 방역 업무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코로나19 사태 발생 전에 통합병동 도우미로 일했던 배은순씨는 3층 격리병동을 전담으로 청소하고 있다.

그는 힘들고 무섭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라도 도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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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병원 4층 격리병동 간호사들의 방호복 착용 전후 모습. 땀자국과 얼굴에 남은 방호복 자국이 고단함을나타내고 있다.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 병동에도 웃음꽃이 핀다


정오께 5층 병동 간호사들이 사무실 CCTV 앞에 모였다. 동료 간호사들이 환자들에게 점심 도시락을 나눠주는 모습을 모니터링 하기 위해서였다. 

 

간호사들의 관심은 한 초등학생이 입원한 병실로 쏠렸다. 

 

아이가 좋아하는 간식이 든 택배를 병실로 넣어주는 순간을 기다리던 참이었다. 택배를 받고 기뻐할 아이를 기대하며 잠시나마 피곤함도 잊은 모습이었다.

환자들의 상태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간호사들은 환자들의 유일한 소통창구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회와 단절된 답답함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기도 한다. 

 

반대로 간호사도 환자로부터 위로를 받는다고 한다. 의료진 역시 일과 삶의 경계가 무너진 격리 생활을 꽤 오랜 기간 이어오고 있어서다.

황세주 간호사는 "환자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 덩달아 행복해진다"며 "환자들이 처음 하루 이틀은 불안해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병원 생활에 잘 적응하고 퇴원까지 하면 큰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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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기전 문제없어, 올해까지 너끈"


오후 3시께 다음 근무자와 교대한 이지연, 한태영 간호사가 퇴근한 곳은 병동 반대쪽 빈 병실이었다. 

 

두 사람이 집을 나와, 병실 침대에 이불 하나를 깔고 지낸 지도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이곳 의료진 대부분은 병원에서 숙식을 해결하거나 안성시에서 제공한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 

 

주말에 짬을 내 집에 잠깐 다녀오는 게 '일탈'이라면 일탈이다. 한태영 간호사는 "시부모님과 딸을 생각해 쉬는 날에도 웬만하면 집에 가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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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께 교대를 마친 간호사가 빈 병실에 마련된 숙소에서 낮잠을 청하고 있다.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이들은 보통 퇴근 이후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잠을 잔다. 숨 막히는 방호복을 입고 긴장을 유지한 채 일을 하다 보니 퇴근하면 방전이 된 듯 온몸에 기운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입원 환자가 늘면서 근무 일정이 빡빡해진 탓에 마음 놓고 푹 쉴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들었다. 그야말로 매일이 전쟁이다.

사태가 길어질수록 의료진의 피로가 누적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들은 '체력'을 염려하는 질문에 "아직 거뜬하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지연 간호사는 "저희끼리는 6월까지로 보고 있었는데, 최근 장기화 얘기가 나오면서 올해까지 견뎌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3층 병동 상황실을 지키던 고보람 안성병원 내과 과장은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고 과장은 "육체적으로 힘든 건 아직 괜찮지만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다는 점에서 정신적으로 다들 힘들 것"이라며 "이런 국가 위기 상황에서 공공병원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했다.

이날 안성병원에 입원했던 확진자 중 3명이 완치 판정을 받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상대적으로 상태가 양호했던 1명은 생활치료센터로 옮겨졌다. 남은 확진자 38명의 완치를 위해 안성병원 직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방호복을 입는다.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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