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재 칼럼]그래도 봄은 온다

이영재

발행일 2020-03-24 제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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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도 역시… 약국에 마스크는 동났다
줄서기 대란은 정부의 무능과 직결된 사례
대통령은 '中전달·생산 충분' 허세끝 '송구'
하늘 도왔나 진정세… 성숙대응 국민만 빛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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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 주필
역시 허탕이었다. 지난주에 이어 이번에도 약국을 찾았지만, 마스크는 없었다. 늦은 시간도 아니었는데 약사는 "지금 이 시각에 와서 무슨 마스크를 찾으슈"라는 표정을 지었다. 약사와 나는 서로 얼굴을 보며 픽 웃고 말았지만, 왠지 뭔가 손해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변 약국에도 마스크는 이미 모두 동난 상태였다. 약국 안까지 들어올 필요 없다며 입구에 '공적 마스크 매진'이라고 친절하게 써 붙인, 잔뜩 때가 묻은 A4 용지는 한 귀퉁이가 떨어져 바람에 펄럭였다. 그 몰골이 찢어진 우리의 자존심처럼 보였다.

이번 코로나 19사태로 우리 국민의 자존심에 많은 상처가 났다. 그중 정부의 무능과 직결되는 중국인 입국 문제와 마스크 대란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여기에 정부 고위관리의 실언이 더해져 국민의 자존심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중국에서 들어온 관광객이 감염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지만, 중국을 다녀온 우리 국민이 감염원으로 작동한 경우가 더 많다."(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중국이 우리에게 각별히 감사해야 한다."(추미애 법무부 장관) "스스로 방역 능력이 없는 나라들은 입국 금지라는 투박한 조치를 하고 있다."(강경화 외교부 장관)

그 와중에 문재인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에 전화를 걸어 "중국의 아픔은 우리의 아픔"이라고 한 것은 정말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국민은 그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누구의 대통령인가. 그 후 중국은 마치 폐렴의 진원지가 우리나라인 듯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지난 19일 자국민에게 한국 등 10여 국에 당분간 여행 금지를 권고했다. 사실상 한국으로의 여행을 금지한 것이다. 전 세계 189개국을 무비자로 갈 수 있었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여권은 이제 중국에서조차 천대받는 무용지물로 전락했다. 이때 많은 국민은 '삼전도의 굴욕'을 떠올렸다.

마스크 문제도 그렇다. 마스크 두 장을 사기 위해 약국 앞에 줄을 서면서 느껴야 했던 그 참담함을, 줄을 서보지 않은 정부 고위관리들은 잘 모를 것이다. 그래서 이번 사태가 종료된 후 가장 먼저 할 것은 마스크 대란 국정 조사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중에 마스크가 사라졌는데 당시 왜 총리실에서 "정부는 마스크 200만 개를 중국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허세를 부렸는지 반드시 규명해야 할 것이다. 그 후 어떤 보고를 받았기에 문 대통령이 "마스크는 수요를 감당하기 충분한 생산 능력이 있다"고 말했는지, 그 충분한 생산능력이 어떤 마술을 부렸기에 다음 날부터 전국적으로 '줄서기 대란'이 일어났는지 따져봐야 한다. 그날 이후 사태가 험악해지자 "수요만큼 충분히 공급할 수 없다면 현실을 알리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라"는 문 대통령의 말이 나왔다. 그리고 마침내 문 대통령은 "마스크를 신속하고 충분히 공급하지 못해 불편을 끼친 점에 대해 국민들에게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코로나 19사태가 터진 후 대통령의 첫 공식 '사과'가 아닌 첫 공식 '송구'였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도 마스크를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늘 그렇지만 우리 국민의 저력은 위기상황에서 빛난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가 자화자찬만 늘어놓고 있을 때, 우리 국민이 보여준 성숙한 시민의식은 감동 그 자체였다.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마스크 쓰기, 손 씻기,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했다. 마스크를 사려고 긴 줄이 생겼지만, 새치기는 없었다. 사재기는 더더욱 찾아볼 수도 없었다. 확진자와 생이별을 하는 기막힌 현실에서도 가족들은 속으로 눈물을 삼킬 뿐, 당국의 대응지침에 잘 따랐다. 이 기간 대구시민들이 보여준 품격과 의료진들의 눈물겨운 희생정신은 '코로나 의병'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은 이런 국민이 사는 나라다.

주말에 조선 시대 역병을 다룬 좀비물 '킹덤 2'를 보았다. 주인공인 의녀 서비가 "추위가 물러가고 봄이 오면 이 모든 악몽이 끝날 것"이란 말이 가슴을 쳤다. 나에겐 이 말이 코로나 19로 무너진 자존심으로 힘들어 하면서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 국민에게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로 들렸다. 하늘이 도왔는지 코로나 19도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 물론 여전히 어렵지만, 우리는 모두 이겨내고 우리가 있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봄이 오고 있다. 이 악몽도 곧 끝날 것이다.

/이영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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