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꽃]산수유

권성훈

발행일 2020-03-24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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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갓 태어난 아기 울음

그치는가 싶더니

무명천 안개 자락에 지리는 배냇똥

살얼음 헛디디며 몇 만리를 흘러왔는지

반가부좌 엉덩이마다 환하게 피는 봄



깨금발로 지나쳐간 내 사랑의 뒤란에

샛노랗게 반짝이는 등불 한 송이

윤향기(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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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탄생은 인류가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이듯이 모든 존재하는 것들도 불변의 이치이긴 마찬가지다. 여기서 사라지고 생겨나는 것들은 서로 유사한 동질성을 지니고 있지만 차별된 것이며 독립된 개체일 뿐. 그것은 봄이 되면 새롭게 탄생하는 생명들의 축제 속에서도 경이롭게 발견되는데, 다 같은 꽃처럼 보이지만 유심히 관찰해보면 꽃 하나 하나의 피어남이 다르듯이 미세한 차이를 보인다. 3월에 개화하며 '지속'과 '불변'이라는 꽃말을 가진 산수유 꽃은 '세상에, 갓 태어난 아기 울음'으로 제각기 피어 있다. 그것도 '무명천 안개 자락에 지리는 배냇똥'처럼 바람이 허공에 배설을 한 것같이. 얼어붙은 반가부좌 자세로 참선을 끝낸 겨울이 환하게 봄으로 환생해 있지 않던가. 거기서 사랑을 잃어본 당신도 그 생각 속 뒤란에서 사랑과 유사한 '샛노랗게 반짝이는 등불 한 송이' 그리움을 찾을 수 있는 것.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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