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정치선동가들의 세상

이한구

발행일 2020-03-25 제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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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SNS 검증되지 않은 정보 쏟아져
기업 돈벌이·정보 조작이 사회분열 초래
사실보다 신념이 여론 주도 탈 진실시대
유권자, 진실 홀대할수록 선동가만 득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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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이것은 사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바나나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들은 '바나나, 바나나, 바나나'라고 계속해서 외칠지 모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것을 바나나라고 믿기 시작할 겁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나나가 아니고 사과입니다."

한때 미국 CNN이 막간에 방영했던 공익광고 내용이다. 중국 진(秦)나라를 들어먹은 내시 조고(趙高)의 지록위마(指鹿爲馬)가 연상된다.

광우병 파동은 2008년 4월18일 이명박 정부의 한미 쇠고기 수입협상 타결 발표에서 비롯되었다. 30개월 미만의 뼈 없는 살코기 수입만을 허용한 2006년의 수입위생조건에서 크게 후퇴한 것이다. 국민의 건강은 뒷전이고 검역주권까지 포기했다며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정부가 오해라며 설득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3개월여의 혼란으로 한국은 커다란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그러나 광우병 파동 12년이 흘렀지만 현재까지 국내에서 광우병으로 인한 사망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세계도처에서 넘쳐나는 가짜뉴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달 미국 트럼프 대통령 탄핵재판 때 2016년 선거에서 트럼프가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당선되었다는 민주당의 주장이 증거부족으로 채택되지 않았다. 그러나 페이스북은 러시아 첩보원들이 2015년 6월과 2017년 8월 사이에 8만건 정도의 게시물을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미국 유권자의 절반 정도인 1억2천600만명이 이 게시물들을 보았을 것이라고 의회에서 발언해 충격을 주었다. 당시 트위터에서도 유사한 사례들이 대량으로 확인되었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들이 검증되지 않은 각종 정보를 마구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러시아, 터키, 이란, 중국, 북한 등의 '인터넷 트롤(internet troll)' 공장에서 가짜뉴스들이 대거 쏟아져 나와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번개 같은 속도로 전 세계로 퍼진다며 걱정하고 있다. 인터넷 트롤이란 온라인에서 선동적 혹은 공격적인 콘텐츠 게시나 댓글로 독자들의 적개심을 유발해서 사회분열을 부추기는 불순세력을 지칭한다.

돈벌이에 혈안이 된 소셜미디어들의 사용자 붙들기는 점입가경이다. 사람들이 각종 포털과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을 통해 뉴스를 접하는 경우가 일상화되었다. 2017년 미국인의 3분의 2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뉴스를 접한다고 답했다. 회원들이 특정 플랫폼에서 시간을 많이 보낼수록 기업은 더 많은 광고수익을 올린다. 이용시간을 극대화하는 방법은 사용자가 일단 클릭하면 PC나 스마트폰에 내장된 인공지능(AI)이 알고리즘으로 분석해서 그가 무엇에 가장 많이 반응할지를 예측한 다음 관련 정보들을 대량으로 쏟아내는 것이다.

IT기업들의 돈벌이와 불순세력들의 정보조작이 사회를 급속히 분열시키고 있다. 전 세계 사람들이 IT과학이 만든 한 방향만 비추는 거울에 집착해서 균형 감각을 상실한 것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사람들이 각자 완전히 다른 정보세계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개탄했다. 디지털혁명에 부수된 새로운 사회병리현상이다. 영어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서평가인 뉴욕타임스의 미치코 가쿠타니는 사람들이 각자 편향된 사일로(silo)와 필터버블(filter bubble)에 갇혀서 사회와 소통하는 능력을 잃고 있기 때문으로 진단했다.

사일로란 곡식이나 사료 등을 보관하는 저장탑으로 사람들이 서로 높은 장벽을 쌓은 채 각자의 이익만 추구하는 경향을 빗댄 것이다. 필터버블은 검색엔진이나 소셜미디어가 선별된 정보를 대량 공급하는 특성 탓에 이용자들이 편향된 정보의 거품에 갇힘을 뜻한다.

지금은 사실의 진위와 상관없이 신념이나 감정이 여론을 주도하는 탈진실(post-truth)의 시대이다. 객관적 사실과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전문가와 강적들'(2017)의 저자 톰 니콜스는 유권자들이 진실을 홀대할수록 무지한 정치선동가들이 득세한다고 역설했다.

4·15총선이 임박했다. 유권자들의 혜안을 기대한다.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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