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에세이

[풍경이 있는 에세이]'사회적 거리'의 두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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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얼굴 맞대고 만나는걸 삼가라
처음엔 당혹스러웠으나 이젠 익숙
좋게 말하면 격리 조금 심하면 유폐
차별과 동시에 배려의 의미도 담겨
예방위해 거리는 멀리 실천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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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용 시인
요즘 코로나19가 전염되는 걸 막기 위해 소위 '사회적 거리두기'를 권하고 있다. 사람 사이에 얼굴을 맞대고 가까이 만나는 걸 삼가라는 뜻이다. 처음 당혹스러웠던 이 말도 꽤 익숙해졌고 이젠 다른 사람을 만나지 말라는 요구에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전염병이 우리의 의식과 생활을 적잖이 바꾸고 있다.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었든 아니되었든 거의 한 달 이상 우리는 스스로 정해놓은 거리를 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좋게 말하면 '격리', 조금 심하게 말하면 자발적 '유폐' 생활을 하는 셈이다.

이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e)'라는 용어는 1900년대 초, 독일의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이 미국 사회를 연구하면서 등장했다고 한다. 그는 개인보다는 집단 사이의 거리, 즉 인종이나 계급 사이의 물리적 거리에 연구 초점을 두었다. 미국에선 흑백 사이의 오래된 인종차별은 물론, 20세기 초에 빈부격차라는 새로운 차별이 생겨났고, 세계 각 지역에서 온 이민자 사이에서도 갈등이 빚어졌다. 즉 짐멜의 연구에서 말하는 '사회적 거리'는 '차별'을 의미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장애인 학교가 들어오는 걸 주민이 막거나, 임대아파트 거주자의 통행을 막기 위해 담장을 치는 등의 문제가 불거진 바 있다. 빈부격차가 계급 간 '사회적 거리'를 만든 예이다.



거리가 멀수록 차별이 심하다 할 것인데, 나는 짐멜의 연구로부터 거의 1세기가 지난 때, 미국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좋은 예를 목격한 일이 있다.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바다처럼 큰 호수가 있었는데, 더운 여름날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수영을 갔다. 그런데 호숫가 백사장에 누가 금을 그은 것도 아닌데 백인과 흑인이 100m쯤 거리를 두고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지금이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살던 1960년대도 아닌데, 나는 너무나 놀라 무엇을 잘못 본 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백인도 흑인도 아닌 나는 어느 쪽으로 가서 수영해야 하나 참으로 난감했었다.

짐멜의 개념은 이후 많은 학자에 의해 더욱 심화한 연구로 발전했다. 그중에서 1950년대 에모리 보가르두는 '사회적 거리'의 물리적 측면보다 심리적 측면에, 또 집단보다 개인에 주목하여 '거리'를 결정하는 요인들을 측정했다. 예를 들면 같은 집단 내의 사람이라 해도, 늘 가까이 있고 싶은 사람과, 가급적 멀리하고 싶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엄마와 아기 사이의 거리는 0m(100)일 것이고, 가족은 10m(101), 이웃사촌끼리는 100m(102)…. 그리고 보기 싫은 원수지간이라면 1천km도 부족할지 모른다.

보가르두의 연구는 모든 개인에겐 고유의 영역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 낯선 사람 사이에는 접근이 불허되는 거리가 있고, 만약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할 때는 양해와 감사를 표시하는 것이 기본이다. 오래 전에 이민갔다 고국을 방문한 한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그는 40년 가까이 미국에 살았으니 그쪽 문화에 더 익숙할 터, 오랜만에 돌아온 한국인의 관습이, 어릴 적 익숙했던 그것이, 아주 새롭게 달리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중 하나는 서울 시내를 걷다가 타인과 너무 자주 몸을 부딪는다는 것, 게다가 아무도 '실례' 혹은 '죄송'하다고 말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제 갈 길로 가더란다. 한국인의 친밀성 때문이라고 설명하기엔 사뭇 아쉬움이 남더라는 것이다.

'사회적 거리'는 차별과 동시에 배려의 의미를 담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를 강조하는 것은 우선 전염병을 막기 위한 조치이지만, 나는 그 안에 차별 철폐와 배려 실천까지 포함하면 좋겠다. 일전에 '국제엠네스티'로부터 받은 한 메일에 'Socially distant, but together'라는 글귀가 적힌 포스터가 동봉되어 있었다. 코로나 전염을 차단하기 위해 사람 사이의 거리는 띄어야 하지만, 그 실천은 '함께' 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느 한 사람의 노력으로는 전염병을 막을 수 없다. 지금이 타자에 대한 배려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가 아닐까 싶다.

/정한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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