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8)차이콥스키의 죽음]거장을 죽인 콜레라, 혹은 동성애 혐오

김영준 기자

발행일 2020-03-27 제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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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의 확산세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에 전염병을 소재로 한 책과 영화가 새롭게 조명되고, 많은 칼럼에선 전염병 관련 옛이야기를 소환하고 있다.

음악계에도 전염병 관련 이야기가 여럿 있다. 19세기의 콜레라는 '근대적' 질병이었다. 런던을 비롯한 유럽 도시들의 팽창 속도와 비교해 상하수도 시설이 따라주지 못했고, 오염된 물을 마신 사람들이 콜레라에 걸렸다.

무역이 발달하고 교통망이 확대되면서 2차, 3차 감염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1820년 전후, 1800년대 유럽에선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콜레라가 유행했다.

당시 콜레라로 죽은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 중 가장 유명한 인물로 '러시아 낭만주의'를 완성한 작곡가 차이콥스키(1840~1893)를 꼽는다.

1893년 2월, 교향곡 6번 '비창'의 작곡을 시작한 차이콥스키는 그해 9월에 작품을 완성했다. 10월 지휘대에 올라 이 작품을 초연한 차이콥스키는 9일 후 세상을 떠났다.

러시아 황실에선 차이콥스키가 죽기 며칠 전 식당에서 끓이지 않은 물을 마시고서 콜레라에 걸렸으며, 끝내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차이콥스키가 타계하고 12일 뒤 개최된 두 번째 '비창'의 공연에서 청중은 꺼지듯 사라지는 작품의 마지막 음형과 함께 작곡가의 마지막을 떠올리며 함께 눈물지었다.

작곡가의 염세적 세계관과 개인적 슬픔이 집약된 '비창'을 사람들은 '자살 교향곡'이라고도 불렀다. 이와 함께 대작곡가의 죽음에 의심 어린 시선을 보냈다.

특히 지인들은 콜레라로 죽었다고 하면서도 소독이나 검역이 없었던 점을 의심했다. 차이콥스키의 시신 앞에 6만명에 이르는 참배객이 다녀갔지만 제지하지 않았다는 거였다.

차이콥스키에겐 비밀이 있었다. 그는 당시 윤리기준에서 용납될 수 없었던 동성애자였다. 동성애 성향을 감추기 위해 여 제자와 결혼을 하지만, 며칠 만에 집에서 뛰쳐나왔다.

여러 차례 정신과 치료도 받았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차이콥스키는 아버지의 강권으로 법률학교를 나왔으며, 법무부 서기로 일하다가 그만두고 음악에 전념했는데, 비밀을 알아챈 법률학교 동료들은 소규모 '동문 청문회'까지 열어 자살을 종용했다.

이를 받아들인 차이콥스키가 콜레라와 비슷한 증상을 내는 독극물인 비소를 먹고 사망했다는 설이 오늘날에는 설득력을 얻는다. 이게 맞는다면, 차이콥스키의 경우는 자살이면서 타살인 기묘한 죽음이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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