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종익의 스타트업

[주종익의 '스타트업']밀알이 죽으면

천재과학자 쇼클리 리더 자질 부족
반도체연구원 8명 갈등 못 견뎌내
새 회사 설립 '실리콘밸리' 초석돼
노키아 1천개 넘는 스타트업 도와
휴대폰 사업보다 핀란드경제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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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종익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대표멘토·에버스핀 감사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성경 구절이 있다. '8명의 배신자' 이야기는 실리콘밸리와 벤처캐피털의 태동과 성장을 이야기할 때 늘 등장하는 사례이다.

옛날에 라디오가 귀할 때 광석라디오가 있었다. 이 광석의 원소가 게르마늄이며 초기의 반도체 소자였다. 열에 약하고 성능이 모자라서 후에 실리콘으로 대체되면서 실리콘 반도체 회사들이 지금의 실리콘밸리에 계곡을 이루듯 설립되면서 실리콘 밸리가 생기게 되었다.

MIT 출신 물리학자이며 천재적인 과학자 윌리엄 쇼클리가 벨 연구소에서 반도체 연구의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고 1956년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를 8명의 기라성 같은 연구진과 함께 스탠퍼드 대학 내에 만들었다. 그러나 쇼클리는 훌륭한 과학자이기는 하였지만, 리더로서는 부족한 자질 문제로 주변의 동업자나 연구원들과의 사이는 좋지 않았고 늘 다툼으로 헤어지는 일이 잦았다.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 8명의 연구원은 끝내 쇼클리와의 갈등을 못 견디고 연구소를 사퇴하고 자신들의 반도체 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흔히 말하는 8명의 배신자가 된 것이다.



8명의 배신자가 반도체회사를 설립하려면 자금이 필요했으나 이들이 투자자를 만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고 이때 IBM의 최대 주주이며 페어차일드 카메라의 소유주인 셔먼 페어차일드를 만나게 도와준 사람이 동부의 금융계에서 일하던 아서 록이다.

1957년에 지금의 실리콘 밸리에 페어차일드 반도체 회사가 설립된다. 이후 많은 반도체 회사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되는 초석을 만들게 된다.

페어차일드에서 함께 근무하던 8인의 배신자 중의 고든 무어와 로봇 루이스가 또다시 배신자가 되어 오늘날의 인텔을 1968년에 만들었고 인텔의 최대 경쟁자인 AMD 반도체회사도 비슷한 시기에 이 지역에 공장을 설립했다.

노키아는 핀란드에서 한국의 삼성전자와 같은 회사였다. 2011년까지 10년이 넘도록 휴대전화 사업 부문에서 세계 1위의 점유율을 유지하는 회사였으나 스마트폰 전략의 실패로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에 휴대전화 부문을 8조원 조금 못 미치는 금액으로 매각하였다.

핀란드에는 큰 걱정을 주는 일이었지만 그들은 슬기롭게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20년이 넘도록 대기업에서 첨단의 기술을 익힌 직원들에게 노키아는 브릿지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퇴직 직원들에게 적극적으로 스타트업에 진출할 기회를 부여했다. 1인당 3천500만원이 넘는 스타트업 자금을 지원하여 능력 있는 기술자들이 1천개가 넘는 스타트업을 창업하도록 도와주어 노키아의 휴대폰 사업 부문에서 이룩했던 성과보다도 더 많은 매출을 달성함으로써 핀란드의 국가 경제에 기여하게 되었다. 핀란드는 인당 스타트업 비율이 세계 1위의 국가다.

노키아가 죽어서 더 많은 열매를 맺었다. 우리나라도 기술 있는 대기업 한 두 개가 죽어서 젊고 능력 있는 기술자들이 스타트업에 진출해야 스타트업 국가로 갈 수 있다고 말하는 이도 심심찮게 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노동의 자유도가 낮은 국가다. 한곳에 뼈를 묻어야 한다는 정신이 있다. 인사 담당은 배신하지 않는 사람을 뽑으려고 관상을 보는 사람을 면접관으로 참석시키기도 했다. 본인 자신들도 배신이나 도전보다는 한곳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공무원을 좋아한다.

이제는 좀 달라졌지만, 회사를 3번 이상 옮긴 사람은 뽑지 않았다. 빨간 줄이 세 번 그어졌다고 마치 감옥에 갔다 온 것과 같은 것으로 비유했다. 한곳에 안주하고 이제 됐다는 생각의 알을 깨고 뛰쳐나가 새로운 꿈을 향한 도전 정신이 일반화될 때 스타트업 국가로 나아가는 길이 트일 것이다. 쇼클리에서 시작된 지속적인 밀알들의 죽음으로 페어차일드가 생겨나고 인텔, AMD, 내셔널세미컨덕터 등을 포함하여 20년 후에는 65개의 반도체 회사를 나았다. 한 회사에 안주하지 않은 수많은 자유로운 영혼들이 인류에게 공헌하기 위해 벽돌 한 장을 쌓아온 지 60년이 넘으면서 미국은 반도체와 컴퓨터에서 세계를 지배하는 국가가 되었다.

그들은 8명의 배신자가 아니라 8명의 개척자였다.

/주종익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대표멘토·에버스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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