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웃었는데… 한순간 사라져"
억누른 감정 표출 기회 거의없어
"얘기하고 공감하는 자리 마련되길"
친구를 잃은 슬픔을 내색하지 않았다. 아니, 내색할 수 없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자식의 이름을 부르면서 울부짖는 친구의 부모님 앞에서 내가 가진 슬픔은 왠지 작은 것처럼 느껴졌다.
차디찬 바다에서 주검으로 돌아온 친구들의 장례식이 하루가 멀다 하게 안산에서 치러졌다.
'난 어디까지 친구였지?', '걔도 날 친구로 생각했을까?'라는 생각에 혼란스러워졌다.
슬픔의 무게가 가늠조차 되지 않던 시간을 보내다 보니 함께 웃고 떠들었던 친구들이 한꺼번에 사라졌다는 현실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그날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는 단원고 희생자들의 한 친구 이야기다.
지난 2017년 봄 세월호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친구들이 처음 한자리에 모여서 자신들의 아픔을 털어놓는 자리가 안산시 단원구 와동의 '치유공간 이웃'에 마련됐다. 치유공간 이웃은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을 기억하고 보듬는 시민사회단체다.
/치유공간 이웃 홈페이지 캡처 |
전국 각지에서 모인 또래 26명이 단원고 희생자 친구들의 아픔을 듣고 기록하는 자리였다.
'공감기록단'이라는 이름으로 당시 활동에 참여했던 전종현(23·대학생)씨는 "억누르던 감정을 트이게 해준 고마운 기회"였다고 떠올렸다.
단원중 출신인 전씨는 동네에서 함께 뛰놀던 친구들을 잃는 아픔을 겪었다. 가족이 아니라는 사실에 가슴에서 끓는 슬픔을 충분히 표출하지 못하고 속으로 삭일 수밖에 없던 그였다. 남은 친구들에게 세월호 참사가 일종의 금기어로 여겨진 까닭이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장례식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해도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친구도 그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어렵게 발걸음을 뗀 장례식장에선 친구 부모님은 웬만하면 마주치고 싶지 않은 대상이었다. 전씨는 "'내 슬픔을 부모님의 슬픔과 어떻게 비교할 수 있나'라는 생각에 울지도 못하고, 슬퍼하는 걸 내색해도 되는 건지도 고민했다"고 옛 기억을 더듬었다.
전씨는 지난 16일 세월호 참사 6주기를 기해 마련된 제주도 기행에 함께 따라갔다. 그 자리에서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의 부모님과 민간 잠수사, 생존자들을 만났다.
그는 "한 부모님이 '친구 얘기를 처음 듣는데 좋았어'라고 하셨는데, 그동안의 고민과 부담이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전씨는 자신을 '행운아'라고 표현했다. 공감기록단에 참여해 슬픔을 치유 받을 수 있었다는 의미다. 여전히 많은 동네 친구들이 그날의 아픔을 털어놓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어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는 "저마다 사랑했고, 아꼈던 친구를 잃었는데 슬프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며 "감정을 꾹 누르며 아프게 사는 친구들이 많은데, 함께 얘기하고 공감하는 자리가 마련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기획취재팀
글: 임승재차장, 배재흥, 김동필기자
사진: 김금보, 김도우기자
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
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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