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월요논단]깨어진 일상과 문명의 새로움

코로나19가 멈춰세운 일상 '당혹감'
잃었던 가치·인간다움 돌아볼 시간
기득권 유지 감춰진 자본 과잉 여전
재난 이용 특권 키울땐 더큰 재앙뿐
생명·삶 위한 새로운 문명의 전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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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그 익숙함으로 인해 당혹감을 주기도 한다. 그 익숙함 속에서 언뜻 언뜻 낯섦을 마주하게 되거나, 또는 벗어나야 할 때가 되었음에도 그렇지 못할 때 오는 당혹감이 그것이다. 일상이 멈출 때 우리는 그 당혹감을 있는 그대로 느끼게 된다. 그때의 당혹감은 그 익숙한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또 진부함을 깨고 새롭게 다가오는 그것이 무엇인지 묻게 만든다. 가장 가까운 이의 부재가 우리에게 그 사람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도 그런 경우다. 코로나19가 멈춰 세운 일상은 이 느낌을 통해 익숙했던 과거와 다가올 시간을 새롭게 보게 만든다. 우리의 일상이 코로나19 이전으로는 결코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어떤 새로움을 보고 있는 것일까. 돌아갈 수 없는 일상, 벗어나야할 일상은 어떤 것일까.

코로나19는 여전하며 위기는 계속된다. 여전히 그 익숙함에 취해 벗어나야할 과거로 돌아가려는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 변화란 익숙함을 막는 장애물이며 문명의 새로움이란 두려운 세상일 뿐이다. 코로나19가 가로막은 일상은 깨어진 삶의 터전을 다시금 보게 만든다. 그 안에서 익숙한 과거로 돌아갈 수도,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도 있다. 무엇을 선택해야할지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그 선택을 위해 깨어진 일상은 무엇이며, 다가올 새로움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돌아봐야 한다.



이번 총선은 코로나19 선거라고들 말한다. 여당이 이 사태로 인해 정치적 이익을 얻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번 총선 결과에는 깨어진 일상을 통해 시민들이 감지한 새로운 삶에 대한 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그 의식을 충족시키지 못할 때 여당에 안겨준 압도적 승리는 압도적 패배로 다가올 것이다. 지금과 같은 삶과 일상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느낌은 우리에게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 상상하게 만든다. 지난 100여 년간 식민지와 분단 상황을 거치면서 겪었던 희생과 고통들,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편입되면서 얻게 된 물질적 풍요 속에서 잃어버렸던 가치와 인간다움을 돌아보게 만드는 시간이 지금 우리 앞에 와있다. 그 안에 희생되고 소외되며, 삶의 사각지로 내몰리는 이들을 공동체 안으로 불러들이지 않으면 이 작은 성공은 더 큰 화가 되어 되돌아올 것이다. 그때는 더 이상 이 정도의 성공조차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무엇이 우리 공동체를 파괴하고, 인간다운 삶을 황폐화시키는가. 방역성공이란 화려함 뒤에 감춰진 자본의 과잉은 여전하다. 불법과 노동탄압을 저지른 재벌총수의 사과는 찾아가야할 김용희의 농성장이 아니라 잘 계산된 정치적 분식에서 공허하게 울리고 있다. 정파적 이익에 매몰되어 맹목적인 분열만 조장하는 언론도, 끝없이 퇴행하던 그 정치도 여전히 한 줌의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노동과 사회적 불평등을 조장했던 사회와 경제 체제가 사라졌는가? 특권에 안주하면서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법조계는 개혁되었는가? 벗어나야할 익숙함과 관행이 다만 잠시 멈췄을 뿐이다. 이 멈춰선 시간이 우리에게 묻고 있다. 어디로 갈 것인가? 재난을 이용해 자본의 영악한 이익을 키우고 자신의 특권을 강화할 생각만 한다면 이 기회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의 예고편이 될 뿐이다.

파행으로 치닫은 대학 강의에 교육부는 다만 등록금 반환이나 수업 일수 준수 따위로만 대응한다. 줄기차게 대학교육 개혁을 말했지만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다. 대선 공약으로 내걸고 철석같이 약속했던 교육개혁은 조금도 이뤄지고 있지 않다. 생태계 파괴로 초래된 생명과 삶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문명의 전환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없다. 그런 사회와 문화가 다음의 위기를 벗어날 힘을 얻을 수 있을까. 깨어진 일상을 넘어 다가올 시대의 새로움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를 위해 개혁해야하며 그를 뒷받침할 철학을 찾아야 한다. 방역선진국이라는 외부의 칭찬에 취해만 있다면 그가 바로 후진국이다. 가보지 못한 길을 상상하면서 문화와 사회체제를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이 새로움을 드러낼 지성적 결단과 미학적 감수성이 필요하다. 생명과 삶을 위한 문명의 전환 없이는 위기를 벗어날 수 없다.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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