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계양산성 국가사적 지정]삼국~조선시대까지 사용… 축성기술 '변천사' 학술가치 높아

공승배 기자

발행일 2020-05-14 제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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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축조된 시기 '불명확' 이유
3년간 4차례 보류 '4전5기' 결실
유물 2천점 확보 박물관도 구상


삼국시대 지어져 군사·행정적 요충지 역할을 한 계양산성이 국가 문화재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4전 5기 끝에 결실을 맺었다.

5세기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파악된 계양산성은 서울과 인천지역을 방어하던 주요 성곽이었다. 한강의 하류와 서해가 만나는 요충지에 있어 지정학적 가치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과거 계양 지역은 지금과 달리 삼면이 물가였기 때문에 계양산 자락에 있는 산성은 사방을 볼 수 있어 지역을 방어하는 데 더욱 유리했다.

계양부사를 지냈던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1168~1241)는 계양산 정상에서 서해를 조망한 감흥을 적은 '계양망해지(桂陽望海志)'에서 "길이 변두리에 사방으로 나 있으나 한 면만 육지에 통하고 삼면은 다 물이다"라고 기록했다.

계양산성은 조선시대까지 쓰였고, 임진왜란 때는 왜군에 점령당하기도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사용된 계양산성은 축성기술의 변천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도 학술 가치를 인정받았다.

계양산성은 인천지역의 19번째 국가사적이 된다. 현재 인천에는 강화산성과 광성보, 서구 경서동 녹청자 도요지, 중구 답동성당 등 18곳의 국가사적이 있다.

강화가 16곳으로 가장 많고 서구와 중구에 각각 1곳씩 있다. 계양구에 국가사적이 지정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계양산성이 국가 문화재로 지정되는 과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계양구가 계양산성의 국가사적 지정을 처음 추진한 건 지난 2016년 7월이다.

하지만 지난 2월까지 3년이 넘는 동안 4차례에 걸쳐 보류 결정만 내려졌다. 처음 축조된 시기가 명확하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이에 계양구는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실시한 10차례의 발굴조사, 문헌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축조 시기를 5세기 삼국시대로 특정했다.

한성백제시대 토기인 '원저단경호'가 출토된 유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분석되면서 이 같은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얻었다. 계양산성은 5번째 심의 끝에 13일 국가사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계양구는 조만간 계양산성을 주제로 하는 계양산성박물관도 문을 열 계획이다. 발굴조사를 통해 백제시대 둥근바닥 항아리와 통일신라시대 줄무늬병 등 약 2천점의 유물을 확보한 상태다.

계양구 관계자는 "계양산성의 가치를 꾸준히 연구해 온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며 "계양산성과 박물관의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계양'을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계양산성은 삼국시대 때 삼국의 치열한 영토 전쟁 과정에 있었다"며 "학술적, 시대적 가치가 매우 높은 만큼 앞으로 국가 문화재로 잘 관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공승배기자 ksb@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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