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재난을 극복하는 예술적 응전

김창수

발행일 2020-05-20 제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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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체에 질병은 피할 도리없는 운명
조지훈作 '병에게'선 삶을 비추는 거울 사유
그러나 감염병은 인류 사회성 자체를 공격
이후는 공존시대… 더 튼튼한 연대 구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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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수 인하대 겸임교수·객원 논설위원
인간에게, 모든 생명체에게도 질병은 피할 도리가 없는 운명이다.

조지훈 시인이 '병에게'라는 작품에서 질병을 정다운 벗, 공경하는 친구처럼 대하며 살아가겠노라고 노래한 것도 그 숙명에 대한 수긍이다. "어딜 가서 까맣게 소식을 끊고 지내다가도/ 내가 오래 시달리던 일손을 떼고 마악 안도의 숨을 돌리려고 할 때면/그때 자네는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네.//자네는 언제나 우울한 방문객/어두운 음계(音階)를 밟으며 불길한 그림자를 이끌고 오지만/자네는 나의 오랜 친구이기에 나는 자네를/잊어버리고 있었던 그 동안을 뉘우치게 되네." 질병은 회피할 수 없는 운명이니 차라리 삶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여기는 전복적 사유를 보여준 작품이다.

그러나 개인이 아니라 가족과 이웃과 지역, 국가와 세계를 위협하며 다가오는 감염병은 운명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코로나19는 문명의 약한 고리, 사회의 빈틈을 정교하게 파고든다. 글로벌 네트워크로 이뤄진 자본주의 생산체제를 공격하고 있으며, 인류의 서식처가 된 도시의 인프라와 인간의 본질인 사회성 자체를 공략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가족과 이웃마저 감염원으로 여기게 하고 각자도생을 강요한다. 밀실이건 광장이건 심지어 일터마저 바이러스가 점유하여 시민들은 가택연금 상태를 견디고 있다.

'유마힐경(維摩詰經)'에서 유마가 설파한 대승적 보살행이 그것이다. 문수보살의 병문안을 받으면서 일체중생(一切衆生)이 병들어서 자신도 병들었으며, 일체중생의 병이 사라지면 자신의 병도 나을 것이라고 말한다. 보카치오(G. Boccaccio)의 소설 '데카메론(Decameron)'은 유럽을 덮친 흑사병에 대응하는 중세인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페스트를 피해 피렌체 교외의 별장으로 피신한 7명의 숙녀, 3명의 신사들이 2주일 동안 격리 생활을 하며 나눈 100가지의 이야기가 소설의 내용이다. 중세 이탈리아 풍속도와 같은 다양한 이야기의 주제는 사랑으로 귀결된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의 주인공 랑베르가 보인 반성도 그와 같다. 신문기자로 오랑시에 취재차 온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페스트로 지옥이 된 도시를 버리고 탈출할 기회를 얻었지만 "혼자서 행복한 것은 수치이다"라고 마음을 돌려먹고 방역조직에 참여하여 페스트와 싸운다. 윤동주 시인도 '병원(病院)'이라는 시에서 가슴앓이를 하는 다른 환자의 아픔, 곧 식민지 민중의 고통을 자신의 병처럼 여기는 청년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감동적으로 노래한 바 있다.

'코로나 이후(After Corona)' 시대에 대한 진단이 시작되었다. 코로나 이후를 말할 때 불행하게도 코로나와 공존하는 시대라는 것이 대전제이다. 백신 개발이 성공한다 해도 다른 바이러스의 위협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002년에 사스가 왔고, 2012년에 메르스가 덮쳤으며 2019년에 코로나19가 위협하고 있듯이 물러갈 뿐 소멸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끔찍한 감염병으로부터 교훈을 '얻어내야만' 하는 것이다.

바이러스 감염병은 우리에게 '얼굴 없는 자'로 살아갈 것과 사회적 거리두기로 격리된 일상을 강요할 것이다. 회피할 수 없는 '비대면' 사회를 수용하되 '스마트한' 방식으로, 오히려 더 튼튼하게 이웃과 세상과 연대하여 응전할 때 극복의 계기를 찾을 수 있다. 중생의 생사를 위해 보살이 존재한다는 유마거사의 대승적 보살행, 식민지라는 질병을 자신의 몸으로 받아 앓다가 죽어간 윤동주의 고결한 시심을 떠올리며, 코로나 위기 저 너머, 그리고 코로나를 부른 현대의 어둠 저 너머를 투시하는 지혜로운 안목으로 새로운 소통, 더 튼튼한 연대를 구상할 때이다. 카뮈 소설의 주인공들이 협동과 연대로 싸워 마침내 페스트로 봉쇄된 오랑시를 구출했듯이.

/김창수 인하대 겸임교수·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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