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된 미래기술-뿌리산업

[가장 오래된 미래기술-뿌리산업·(2)자부심 꽃 피우는 청년들]편견에 무너지는 아이들의 꿈

오랜 학과이름 뽑아버린 학교… '좌절감'부터 심어주는 선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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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 결정때 학부모들 '기름밥' 부정적 인식 영향… 뿌리산업 명칭 학과 선택 꺼려
특성화고 기계과 3년새 정원 2354명↓… '車·컴퓨터' 등 다른분야와 결합 자구책


■ 학과 이름까지 바꿨다


오랫동안 정부와 사회, 어른들이 겹겹이 쌓아올린 뿌리산업을 둘러싼 편견은 아이들의 꿈도 가로막았다.

경인지역 특성화고등학교에서 '금형과' '기계과' 등 뿌리산업 명칭을 그대로 담은 학과명을 찾아보기 어렵다. 학과 수도 줄고, 이름도 바뀌어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전국 직업계고 1학년을 기준으로 교과군별 학과정원 변동추이를 조사한 결과, 기계과의 경우 2016년 1만7천699명이지만 2019년은 1만5천345명으로 2천354명이 감소했다. 재료와 화학공업도 각각 225, 379명이 줄었다. → 표 참조

학생 모집이 어려워지자 최근 학교들은 학과 이름을 바꾸기 시작했다.

경기도내 특성화고의 경우 기계과는 초정밀기계과· 컴퓨터응용기계과· 산업기계과·자동화기계과·기계산업설계과 등으로, 금형과는 자동차금형과, 금형디자인과 등으로 대부분 변경됐고, 인천도 기계나 금형, 용접 등 뿌리기술 전반을 배우는 학과들이 에코자동차과, 자동차IT과, 그린자동차과, 자동차테크과 등으로 바뀌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경인지역의 한 마이스터고 기계과 부장교사는 "순수하게 기계, 금형이라고 하면 모집이 잘 안된다. 수식어를 조금씩 넣어서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한 것"이라며 "중학생들이 진로를 정할 때 학생 혼자 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 의견이 강한데, 부모들이 '노가다' '기름밥' 등 (뿌리산업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가지고 있어 꺼리는 경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른 부작용도 있다. 컴퓨터, 자동차 등 다른 과목이 덧붙여지면서 교과 내용도 추가돼 뿌리기술 교육의 집중도가 떨어진다.

또 학과 명칭이 구체적으로 바뀌면서 오히려 취업의 폭이 협소해 진다는 측면도 있다. 경기도 수원의 한 특성화고 금형과 교사는 "단순히 금형과, 기계과라고 하면 기계를 사용하는 산업 모두에 취업을 할 수 있는데 자동차, 컴퓨터, 폴리 등 수식이 붙으면 기업들에서 타이틀만 보고 관련성이 떨어진다고 여긴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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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 경력의 기성세대 직원들, 나아지지 않는 '저임금·고노동'탓에 무기력 호소
업무환경·방식 변화 거부감… 새로 유입된 젊은인재와 잦은 갈등·발길 돌리게해

■ 선배들의 낮은 자존감, 젊은 인재 발길 돌린다


기술은 숙련기간이 긴 만큼, 뿌리기업은 최소 20년 이상의 숙련된 노동자들이 많다. 하지만 뿌리산업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면서 수십년 간 이들 노동자의 처우도 변한 것이 없다.

문제는 오랜 시간 저임금·고노동에 시달렸지만 임금과 근무환경은 나아지지 않고, '3D, 하청업체'라는 사회적 편견까지 덧대어져 뿌리 노동자들의 자존감이 낮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희망을 갖고 새로 유입된 젊은 학생들과 기존 노동자들이 융화되지 못한다는 게 학교와 현장의 목소리다.

실제로 2018년 뿌리산업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2017년 기준, 뿌리산업 종사자 임금수준은 중소제조업체의 75.7%에 불과했고 근로시간은 일평균 0.4시간 더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그래픽 참조

경인지역 특성화고 관계자는 "기계, 금형 등을 전공하는 아이들이 입학하기 전에는 사회적 시선 때문에 고민했다가도 막상 학교에서 공부한 뒤에 평생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면 오히려 전공을 살려 관련 기업에 취업하려고 한다"면서도 "그렇게 열정을 갖고 취업했다 중도에 퇴사하는 학생들을 보면 일이 힘들어서 보다는 기존 직원들, 선배들과의 갈등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특성화고 학생 등 젊은 인재에 직접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정부나 지자체가 뿌리기업에 근무하는 이들의 처우와 인식 및 환경개선에 적극 지원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기도 광주에서 소성가공 전문기업 기원MRO를 운영 중인 이석기(35)대표도 기성세대의 인식개선을 호소했다. 이 대표는 "2018년 초에 업체를 인수해 운영하면서 최신 기계에 맞춰 공구 제작 방식을 개선하려고 하자 15년 이상 경력이 있었던 기존 40대 직원이 '쓰던 대로 만들자'고 반발하며 마찰이 심해졌다.

이들 직원은 이 산업에 대해 '할만큼 했다. 그만하겠다' 등 자조의 목소리가 많았다"며 "아직 뿌리기업이 위험하고 깨끗하지 않다는 젊은 층의 인식이 많은데, 사장부터 기성세대들이 생각을 바꿔 조금만 노력하면 생각보다 쉽게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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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팀

글 : 공지영차장, 김태양, 이여진기자
사진 : 조재현, 김금보, 김도우기자
편집 : 김영준, 안광열, 박준영차장
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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