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 호조벌 '조성 300년 역사적 가치' 재조명

심재호 기자

입력 2020-05-30 15: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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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벌 들판. /시흥시 제공

시흥시 포동 동남쪽과 하중동 서북쪽으로 연결된 호조벌(호조방죽)은 시흥 농업의 상징격으로 독특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조성 300년 동안 그 역사와 전통성이 그대로 간직되고 있는 셈이다. 긴 갯고랑이 드나들던 바닷가에 방죽을 쌓는 물막이 공사 끝에 탄생한 농토로 시흥 땅 가장 핵심에 떠올려지는 지역 주요 자원 중 하나다. 조성 배경과 과정을 들여다보면 백성을 위한 위민적 정신이 조성 역사속에 그대로 드러나 더욱 친밀감을 준다. 시흥 호조벌이 품은 간직한 의미는 수도권 농업사(史)를 대변할 정도로 각별하고 특별하다.

■ 호조벌의 축조 역사

호조벌은 조선 경종 즉위 1년(1721)에 조성됐다. 당시 조선의 행정기관인 6조 중 하나였던 호조(戶曹)소속 진휼청(賑恤廳)에 의해 조성돼 지금까지 전해진다. 당시 진휼당상을 지낸 민진원의 진두지휘 아래 호조방죽을 축조한 것으로 승정원 일기는 기록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꼭 300년 전 시점이다. 현재 시흥시 포동에서 하중동을 잇는 약 720m의 옛 국도 39호선이 지나가는 도로를 당시 축조 제방으로 추정된다. 제방 이름을 당시 '호조방죽'으로, 이 제방을 쌓아서 새로 생긴 넓은 벌판이 바로 '호조벌'이다.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후 궁핍해진 나라 살림과 기근에 멍든 백성들을 동시에 구제하기 위한 것이 조성 배경이다. 간척사업을 통해 이를 극복해 보려는 국가 차원의 산물인 셈이다. 조선시대 간척지로 태어난 역사적 자산과 가치를 갖고 있다.

빈민구제를 위한 흔치 않은 진휼미(賑恤米) 생산지란 정통성과 '간척→농지 보존'을 통해 자연환경을 극복했다는 역사적 의미도 담고 있다.

호조벌은 480㏊(2천127필지) 규모로 현재 시흥시 매화동을 포함해 미산동, 은행동, 안현동, 매화동, 도창동, 금이동 등 관내 10개 동에 광활하게 걸쳐지는 등 일대 개발 변천사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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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벌 들판. /시흥시 제공

■ 호조벌의 변천사

조선 시대 구휼미 등 백성들의 기근 등 어려움을 구제하기 위한 용도의 이 곳 생산 쌀은 시대 변천사를 타고 이제 관내 학교 급식용으로 미래 동량들을 위한 용도로 활용·공급된다. 시흥시 중심부에 위치한 대규모 벼농사 지역으로 친환경 쌀을 생산하는 지역 대표 쌀 생산지로 탈바꿈되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난개발과 환경파괴로 얼룩진 수도권에서 이처럼 옛 농업환경을 보존하는 희소가치까지 갖춰가며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 곳 생산 쌀은 현재 관내 유치원부터 초·중·고교 일부 등 관내 91개교에 걸쳐 학교 급식용 쌀로 공급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진휼미로 시작된 용도가 지난 3세기 이전 시점과 비교해 친환경 급식 형태로 변해 있을 뿐이다.

원목연 농업기술센터 농촌자원팀장은 "호조벌은 각별한 의미 만큼이나 지속 가능한 환경속에 지속적으로 보전돼야 할 틀림없는 역사적 자원"이라며 "농업인은 물론 모든 시흥 시민들이 호조벌에 대한 역사와 생태적 가치를 공감해 함께 지켜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고 말했다.

시흥/심재호기자 sj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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