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수요광장]누구나 가면(假面)을 쓰고 살아갑니다

이면에는 나를 초월한 욕망의 갈구
힘들때 술한잔 기울이며 태연하듯
삶의 억압·제약 속 낭만·해학 담겨
그래도 눈빛은 내면을 엿볼수 있어
감춰진 본모습 '이해' 사랑의 출발


홍승표 시인·전 경기관광공사 사장
홍승표 시인
복면을 쓴 사람들이 얼굴을 감춘 채 노래 경연을 하는 TV 프로그램이 있는데, 누구인지 맞혀보는 재미가 참 쏠쏠하지요. 감추는 것, 그게 가면의 본질입니다. 실제와 다른 모습을 보이고자 하는 것은 모순된 일이지만, 민낯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울 때 가면은 좋은 방편이기도 합니다. 얼굴을 감추고 자신을 초월한 그 무엇인가를 갈구하려는 욕망, 그게 고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면이 소멸하지 않는 이유이겠지요. '로미오와 줄리엣'은 비극적인 사랑의 대명사로 불리는 명작입니다. 이 작품의 백미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가면무도회에서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대목이지요. 가면 속 눈빛에 빠져드는 알 수 없는 이끌림과 가슴 설렘이 그들을 걷잡을 수 없이 불타게 합니다. 얼굴은 가려졌지만, 감춰지지 않는 내면이 엿보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면이 세상을 풍자하는 용도로 많이 쓰여졌지요. 권위적이고 위선적인 양반들의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풍자하는 양주별산대놀이가 대표적입니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도 주인공은 탈을 쓰고 한마당 연회를 신명 나게 이끌어갑니다. 물론, 그것은 흥겨운 잔치가 아니었지요. 가면 속에서 험한 세상과 고관대작들을 조롱하는 사설은 어느 사랑 타령보다도 피를 토하듯 절절하게 마음을 울리지요. 영화 속이지만, 광대 스스로 벅찬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억압과 제약 속에서도 즐거움과 정겨움과 낭만이 있는 가면 세상. 서양의 가면무도회가 소통하며 즐기는 모임이라면 우리 가면극은 주로 세상을 비판하는 해학과 풍자의 한마당이었지요. 그 게 우리 삶의 가치이자 여유입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지요. 하늘이 내려준 인연을 맺고 사는 부부, 피를 나눈 자식, 형제자매간에도 감추고 싶은 게 있습니다. 하물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지요. 오랜 세월 함께 지낸 친구로부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당하고 한동안 공황 상태에 빠진 일이 있습니다. 믿었던 얼굴 뒤에 감춰진 또 다른 모습을 미처 보지 못한 것이 불찰이지만, 가면치곤 너무 무섭고 가혹했지요. 그러나 스스로 마음을 정리했습니다. 제 생각과 다르다고 그게 원망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지요. 이해할 수는 없어도 생각이 다를 뿐이지 그 친구의 생각도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속내를 감추고 아무 일 없는 듯 지내고 있는 저도 가면을 쓴 셈이지요.

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의 '표리부동(表裏不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겉과 다른 행태를 보는 건 참으로 무섭고 위험한 일이지요. 하지만 남을 속이지 않고 사는 사람, 자신을 속이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게 인생살이기도 하니까요. 세상이 맘대로 살아지는 게 아니니 말이지요. 하지만 살면서 지켜야 할 상도(常道)는 있습니다. 그것마저 외면하면서 살면 안 됩니다. 그건 사람으로서 도리가 아니지요. 가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을 저질러 놓고도 아주 당당하게 자기명분을 세우려는 사람이 우리를 당혹 시킬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상대방을 왜곡된 프레임에 가두려는 사악한 일까지 벌여 세상이 무섭다는 걸 절감하게 되는 경우도 생겨나지요.

사람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사는 게 힘들고 버거울 때 초승달 눈 흘기는 포장마차에 들어 눈물이 녹아든 술잔을 기울이곤 태연한 얼굴로 살아가는 게 세상살이이기도 하지요. 각박한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생존의 몸부림이기도 합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한 꺼풀만 벗기면 가면을 쓰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지요. 이렇게 보면 남을 속일 수밖에 없으면 가면이라도 쓰는 게 사람다운 몸짓이 아닐까요. 다만, 가면을 왜곡에 이용하면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가면을 써도 사람 된 도리와 본분을 잊어선 안 되지요. 가면을 만든 이유도 최소한 하소연이라도 할 수 있게 숨구멍을 열어 준 것 아니겠습니까. 가면 속에 감춰진 진짜 모습을 보는 것, 그 모습을 이해해 주는 것, 이게 사랑의 출발이 아닐까 합니다.

/홍승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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