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특성화 논리를 돌아본다

김창수

발행일 2020-07-01 제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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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보유자원 활용높이기 집중·선택 전략
국가·지방정부 의심 여지없이 상식적 사용
그러나 정체성 고착 잠재·자족성 훼손 우려
코로나이후 '전일성시대' 삶의 질 강조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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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수 인하대 겸임교수·객원 논설위원
상식처럼 간주되는 논리도 때때로 점검해보아야 한다. 상식처럼 통용되는 담론이야말로 합리적 성찰이 비껴가는 인식론적 함정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특성화' 논리도 그 사례 중의 하나이다. 그중 '지역 특성화' 논리는 국가나 지방 정부가 의문의 여지 없이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지역은 특성화되어야 한다'는 당위명제는 어디에서 온 것인지 따져 묻지 않는다. 왜 지역만 특성화하고 서울은 특성화하지 않는가, 혹은 특성화가 되면 과연 지역이 발전하는가 캐묻지 않는다. 이미 교리가 된 것이다.

특성화의 논리는 경쟁을 최소화하고 지역이 보유한 자원의 활용도를 높이려는 집중과 선택 전략이다. 그런데 누구를 위한 특성화인지 질문해야 한다. 특성화는 지역의 특수한 조건이나 자원을 활용한 내생적 발전계획이 아니라 국가나 중앙정부의 국토관리 전략에 가깝다. 그래서 서울은 특성화하지 않는다. 지방이 특화된 기능으로 분화하면 할수록 특수기능만 갖는 불완전한 공간이 되고 만다. 대학 특성화 사업도 마찬가지이다. 이 사업은 대학이 지역사회 수요에 기반을 둔 강점 분야에 특성화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정부의 재정지원 사업이었다. 그런데 재정지원의 핵심 기준이 대학별 정원 감축으로 귀착되면서 전국의 여러 대학에서 취업률이 낮은 인문·예술 계열의 학과를 통폐합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특성화 때문에 대학 본연의 기능을 스스로 포기하는 역설적 현상이었다.

특성화 때문에 지방은 오히려 영원히 중앙정부에 의존하는 지방으로 남을 수도 있다. 특수성의 추구로 다양성과 자족성을 획득하지 못하게 되니 말이다. 수도권의 위성도시들은 특정한 기능을 가진 도시들이다. 베드 타운이거나 농업이나 공업, 혹은 물류 인프라를 담당한다. 경제적으로 특화되지만 정치와 교육 문화 소비는 서울에 의존하는 불균형 관계이다. 이 같은 의존관계로 주변부 도시 주민들의 정주성은 떨어지고 있다. 기능주의적 도시정책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져야 하는 이유이다. 쇠퇴일로를 걷는 러스트벨트(Rust Belt)의 대명사가 된 미국 디트로이트시를 보라. 한때 자동차 산업의 중심도시로 미국 제조업의 중심도시로 발전해왔지만 미국자동차 산업의 쇠퇴로 디트로이트시는 파산하고 말았다. 디트로이트는 지금 범죄율이 가장 높은 위험도시가 되었다.

특성화 전략은 지역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고착시켜 역동적 잠재력이나 자족성을 훼손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도시의 기본 기능과 다양성의 기초 위에 추구해야 한다. 기본을 소홀히 하고 특성에만 매달릴 수는 없다. 문화에서 다양성은 지역과 도시에서도 중요한 창조자원이지만 특성화가 다양성을 잠식하는 결과를 낳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문화 도시의 문화를 특정문화분야, 특정 예술 장르 중심으로 특화할 것을 요구하는 한국의 '문화도시' 사업은 국가차원에서 보면 다양성의 실현처럼 보이지만, 해당 지자체 시민의 관점에서 보면 선택의 폭을 좁힌 단순화일 수 있다.

국제분업 생산시스템도 국가주의나 패권경쟁이 심화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설상가상으로 팬데믹의 위기가 장기화되면서 무력함이 확인되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 일본의 불화수소 수출규제로 시작된 한일무역분쟁에서 뼈아픈 교훈을 얻었다. 적어도 전략물자는 자급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코로나 위기에서 집이 일터이자 학교이자 휴식처로 바뀌었듯이 마을과 도시와 국가도 자립과 자족성을 강화해야 한다. 지금은 특성화의 시대가 아니라 기본을 잘 갖춘 전일성(holism)이 절실한 시대이다. 특성화가 국제 분업과 국내 도시 역할 분담론에 기초한 고도성장기의 패러다임이라면 전일성은 삶의 질을 강조하는 논리이며, 사회적 격리로 국제간 도시간 이동과 접촉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을 견디면서 살아가야 하는 시대의 생존 논리이며 위기 대응 패러다임이다.

/김창수 인하대 겸임교수·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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