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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홍콩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화려한 야경과 물질적인 풍요, 영연방 국가로 그들이 누리고 있는 정치적 자유. 전쟁 직후인 1954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로 시작되는 금사향의 노래 '홍콩 아가씨'의 유행도 이런 정서와 무관하지 않았다. 60, 70년대 홍콩 영화는 또 어떤가. 홍콩 영화를 보기 위해 꾸역꾸역 극장으로 몰려들었다. 왕유의 외팔이 시리즈와 쿵후 영화를 하도 많이 봐 제작사 '골든 하베스트'로고를 외울 정도였다.

우리만이 아니다. 홍콩은 중국의 젊은이들에게도 선망의 대상이었다. 경제적 상황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중국에선 찾을 수 없는 '자유' '개방' '중립'이 홍콩에는 있었다. 많은 젊은이가 '홍콩 드림'을 꿈꾸며 모여들었다. '중국 청년 소군(리밍)도 그때 홍콩으로 들어와 맥도날드 가게 종업원 이요(장만옥)를 만난다. 모두 홍콩 드림의 주인공들이다. 사랑은 쉽게 이뤄지지 않고, 이별과 재회만 계속한다. 마침내 엇갈린 운명으로 각자의 길을 가는 두 사람…' 1997년 타임 지 선정 세계 10대 영화에 오른 첸커신( 陳可辛) 감독의 슬픈 영화 '첨밀밀(甛蜜蜜)'은 '홍콩 드림'이 그대로 녹아든 영화다.

하지만 영화에서 이들이 홍콩 반환을 앞두고 뉴욕으로 떠났듯, 별들의 도시 홍콩은 1997년 7월 1일 중국 반환 이후, 점점 과거의 명성을 잃기 시작했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사회적 분위기가 변화무쌍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국방과 외교를 제외한 행정·입법·사법의 자치권을 홍콩에 주며 '항인치항(港人治港: 홍콩인이 홍콩을 다스린다)'을 말했지만, 그럴수록 중국 정부를 믿을 수 없었다. 정치적 자유도, 경제적 풍요도 모두 잃을 거란 두려움이 홍콩인을 늘 따라다녔다. 홍콩인들은 하나둘 미국이나 캐나다 또는 본토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지난 7월 1일 보안법 시행으로 홍콩이 대 전환의 길을 맞고 있다. 많은 이들이 체포되고 체재 비판 서적들은 판매금지 됐다. 미국의 홍콩 특별지위 박탈까지 더해지면서 글로벌기업과 금융자본이 동요하는 등 1997년 홍콩 반환 당시 벌어진 '홍콩 탈출' 이른바 '헥시트(HK+exit)'가 재현될 조짐을 보인다. 이미 이민 상담과 해외 부동산 매입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홍콩의 밤에 더는 별들이 소곤 되지 않는다. '첨밀밀'처럼, 그저 슬픈 홍콩인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을 뿐이다.

/이영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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