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에세이]엄마, 정말 괜찮은 거예요?

김서령

발행일 2020-07-31 제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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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 시국
맞벌이 여동생네 두아이 맡은 엄마
밥·공부 챙기랴 종일 실랑이 진빠져
"모두가 못할짓" 한계 다다른 푸념
나중에 이 시기를 어떻게 기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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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 소설가
요사이 엄마는 밤 아홉 시만 되어도 잠이 든다. 잠 없는 분이라 열한 시쯤, 아니면 그 넘어라도 종종 내게 전화를 걸어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곤 했는데 지금은 그럴 일이 없다.

맞벌이 여동생네 아이들 둘을 보느라 진이 빠져 그렇다. 초등 3학년과 5학년. 사실 작년만 하더라도 아버지가 더 바빴다. 아이들의 등하교부터 요일별 학원 라이딩을 아버지가 도맡았기 때문이다.

70대 중반이면 운전면허를 반납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며 걱정하는 이들도 많지만 나만 하더라도 아버지의 운전 실력을 아직은 걱정하지 않는다. 공고 자동차과 출신인 아버지는 33년 한 직장에서 근속하면서도 아주 오랫동안 운전학원 강사로 투잡을 뛰었던 사람이다. 아직도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장난감이 자동차인 줄로만 아는 분이다. 그런 분이 벌써 반 년이 넘도록 꼼짝없이 집에 묶여 있다. 아이들이 학교도, 학원도 가지 않는 데다 풀렸다 말았다 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아버지의 집 밖 출입은 애초에 금지당했다.

며칠 전에는 이가 욱신거려 치과에 가려 했지만 엄마가 버럭 소리를 쳤단다.

"갔다가, 코로나라도 걸려오면 애들은? 애들은 어쩌라고요? 애들 엄마랑 애들 아빠 회사는?" 아버지는 아픈 이를 타이레놀로 겨우겨우 달랬단다. "야, 지금 얻다 대고 느이 아버지 걱정이야? 제일 죽을 맛인 사람은 나야! 이 나이에 내가 애들 둘이랑 느이 아버지까지 셋을 밥해 먹이느라 골병이 들어!"

온라인 개학으로 큰 녀석은 아버지 컴퓨터를 차지했고 엄마의 스마트폰은 둘째 녀석 차지가 되었다더니, 엄마와 아버지가 불편할까 봐 아이들 각각에게 태블릿을 사주었단다. 그랬더니 이제는 하루종일 태블릿을 들고 게임만 하려드는 손주들을 말리느라 엄마와 아버지의 일이 더 늘었다. 손주들 사진으로 범벅이던 가족 단체 카톡방은 알 수 없는 암호로 가득하다.

'엄마, 영어학원 온라인 클래스 비번은 4kjsi89uu예요', '엄마, 온라인 알림장 캡처해서 보낼 테니 확인 좀 해줘요'.

여동생은 하루에도 몇 번씩 메시지를 적어놓지만 엄마가 과연 저걸 다 알아듣고 다 처리할 수 있을까, 멀리 사는 나는 머리통만 긁적일 뿐이다. 도대체 이 시국은 대한민국의 할머니들을 다 말려죽일 셈인가. 엄마, 정말 괜찮아요?

그쯤 되는 실정이니 여섯 살 아이랑 온종일 방구석을 뒹구는 나 따위는 팔자 편한 처지라고 되레 욕이나 먹을 것 같아 입을 다물고 만다. 아이는 7개월 만에 드디어 유치원에 나가기 시작했지만 2주도 안 되어 방학을 맞고 말았다. 맙소사. 정말 모두가 못할 짓이다.

식구들 밥 먹이는 일을 세상에서 가장 중한 줄 알고 살던 엄마도 한계에 다다른 모양이다.

"야, 무슨 애가 밥을 그렇게 많이 먹냐? 나는 참말로 기가 차서. 밥상 치우고 뒤돌아서면 또 배가 고프대. 그래서 고구마 삶아주면 두 개, 세 개, 홀랑 집어먹고는 또 뭐 먹을 거 없냬. 하이고, 애들 엄마가 인터넷으로 장을 봐서 우리 집으로 보내는데 뭘 산처럼 우리 집에 쌓아놔도 이틀이면 하나도 없어. 정말이야, 농담이 아니라니까." 그러면 스피커폰으로 듣고 있던 아버지가 슬그머니 끼어든다. "나는 귤 한 개도 못 집어먹는다. 애들 먹을 거 없다고. 난 생선도 한 점 못 집어먹어. 진짜야."

우리는 나중에 이 시기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어머, 정말 돌이켜보니 믿을 수 없어. 우리 어떻게 그렇게 집에 콩 처박혀 살 수 있었을까. 그러면서 까르르 웃게 될까. 지금이야 놀이터 뽀얗게 덮은 미세먼지 보며 한숨이나 쉬고 있는 처지지만.

/김서령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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