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경의 '노래로 본 사자성어']격세지감(隔世之感)

고재경

발행일 2020-08-10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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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사랑관 편견 없어진 현대
여성 능동적 구애로 사랑에 빠진
홍경민 '그녀의 매력' 대표사례
원시 모계사회 부활 보여주는 듯
코로나19도 마찬가지… 변화 실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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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
격세지감(隔世之感)은 다른 시대를 사는 듯 크게 변화를 느끼는 감정이란 뜻이다. 뽕나무 잎이 푸른 바다로 변하듯이 이전과 대비하여 전혀 다를 정도로 몰라보게 변해버렸다는 의미이다. 이 같은 격세지감은 대중가요 속 현대 남녀 사랑관에서도 눈에 띄게 나타난다.

원시 모계사회는 연애와 결혼이 현재보다 더 자유로운 세상이었다. 여성의 환심을 사기 위해 남성들이 짙은 화장을 했을 정도이다. 부계사회의 도래와 함께 모계사회의 자유로운 남녀 사랑에 서서히 족쇄가 채워지고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인식하게 된다. 근대를 거쳐 현대 사회에 진입하면서 남녀 사랑에 더 이상 사회적 장애물과 편견이 없음은 물론이다.

홍경민이 부른 '그녀의 매력'(작사·작곡 김창환) 노랫말에서 격세지감의 현저한 예를 살펴보자. 곡목 '그녀의 매력'의 전체를 관통하는 가사는 남녀 애정과 프러포즈에 대한 기존 관념의 전복(顚覆)을 보여준다. 가사 도입부에서 화자는 어느 날 한 여인을 만난다. 그녀는 '청바지'와 하얀색 '티'를 입고 '파란 운동화'를 신은 채 '윤기 나는 검은 긴 머리'를 하고 그 앞에 나타난다. 그녀의 겉모습은 '청순'하고 '말투'는 '톡톡' 튀듯 거침이 없을 정도로 자유분방한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그녀에게 홀딱 반해버린다. 그녀를 계속 주시하면서 좋아하는 감정을 표현하고 싶어 하지만 그는 차마 말을 꺼내지도 못한 채 주저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히려 그녀가 불쑥 이렇게 말을 꺼낸다. '남자가 속 좁게/뭘 그렇게 망설이냐'. 그녀의 이러한 직설적인 말에 그는 어리둥절한 채 잠시 할 말을 잊는다.

이어서 그녀는 그의 모습에서 '매력'을 발견했다며 교제할 의향을 거리낌 없이 먼저 제안한다. 대부분의 경우 남녀가 만났을 때에는 설령 여성이 상대방과 교제하고 싶은 감정이 있다 해도 먼저 의사를 밝히지 않는 편이다. 대체로 상대방 남성이 여성에게 적극적으로 교제 의사를 프러포즈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곡명 '그녀의 매력'에 등장하는 여성의 능동적인 구애 공세에 화자는 순간적으로 깜짝 놀란다. 이 순간 남성으로서 '자존심'이 상해버린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속삭인다. '뭐야 세상이 변했어/여자가 먼저 프러포즈를 해/자존심 상하는데 이상하게 더 끌려/당당한 네 모습이/왠지 매력 있어/좋아 한번 사귀어 보자'.

여성의 예상치 못한 프러포즈 제안에 화자는 화들짝 격세지감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그는 그녀가 허락도 없이 자신의 마음을 훔쳐간 사실을 직시한다. 그럼에도 그의 순간적인 상상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그의 마음은 곧바로 여인을 향한 사랑의 매력에 깊이 빠져버린다. 심지어 자신의 마음을 '이미 뺏어 갔으니 누가 먼저'라도 프러포즈하여도 좋다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더 나아가 '사랑에 무슨 격식이 필요하겠어'라고 외치며 오히려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어찌 보면 그는 그녀로부터 사랑의 무장해제를 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이후 그는 '넋이 나간 채' 그녀만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이때 그녀는 '예쁜 여자 처음 보냐'라며 그에게 '농담' 반 진담 반 말한다. 그녀의 이러한 당당한 말을 듣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그는 '얼굴 붉어진 채 애써 딴청 하려' 한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진솔한 매력에 자석에 끌리듯 몰입하게 된다. 남성을 향한 여성의 적극적인 구애는 과거 원시 모계사회를 지배한 남녀 사이의 자유로운 사랑관의 부활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현재 격세지감의 정점은 지구촌 전역에 여전히 확산 중인 코로나19 후유증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제2차 코로나19 파동이 도래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진단한 바와 같이 전 세계가 백년에 한 번 나올만한 보건 위기이다. 코로나19 사태가 평범한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다. 감염 및 사망 공포로 인해 '언택트(비대면)' 시대로 급격히 전환되고 있다. 남녀 사랑관의 숨 가쁜 대변화와 함께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격세지감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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