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철 칼럼

[윤상철 칼럼]껍데기만 남은 사회규범을 위하여

민주주의는 국내 최상위 정치규범
최근 3권분립.소수존중 등 동요 목도
'서울시장 사건'에 페미니즘의 회의
환경생태주의도 '4대강 논란' 퇴색
실천적 실재 못찾는 현실 안타까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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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지난 40년간 한국사회의 최상위 정치 규범은 민주주의였다. 여야와 좌우를 넘어 민주주의에 대한 합의 수준은 매우 높았다. 사회적 배경에 따라 다르기도 했지만, 지역간의 차이는 비교적 선명했다. 특히 호남지역은 5·18 민주화운동 이후 민주주의와 민주당 계열 정당에 대해 굳건한 지지를 보여줬다. 최근 진보적 원로정치학자인 최장집은 현 정부 들어 나타난 정치적 양극화와 민주주의의 퇴행을 들어 현 정권의 민주주의는 실상 다수결로 무장한 전체주의라고 일갈한 바 있다. 어떤 보수 정치철학자는 현 정권을 연성 파시즘으로 규정한다. 국가주의적 이념의 혼란을 감안한다면 전체주의적 포퓰리즘 독재가 더 적절해 보이기도 한다. 최근 우리는 정치적 다원주의 혹은 자유민주주의체제 하에서 볼 수 있었던 삼권분립, 법의 지배, 언론의 독립, 소수에 대한 존중 등이 동요하고 있음을 목도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현 정권의 진보적 좌파성향과 민주주의 성향을 중시하여 지지를 해왔던 호남지역은 가장 먼저 그 정치적 지지를 철회하거나 약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다른 지역민들의 정치적 지지가 눈에 띄게 퇴조하는 상황에서 호남지역의 지지는 철옹성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지지했던가?

페미니즘 혹은 성평등주의는 또 하나의 최상위 정치규범이다. 대통령조차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칭하고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여성가족부'가 날로 그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스스로를 페미니즘과 동일시하지 않고서는, 정치인도 교사도 학자도 그 사회적 입지가 흔들리고 노골적인 비난에 직면하며, 심지어 평범한 남성들도 사회적 삶을 견뎌내기 버거운 꼰대로 전락한다. 비례대표 여성할당제 등으로 인해 여성 국회의원들의 비중은 점차 높아지고 있고, 성평등교육은 정부기관, 교육기관뿐만 아니라 일반기업까지 확산되고 있다. 그럼에도 현직 서울시장의 성추행사건이 수년간에 걸쳐 진행되고 있었을 때에 그 피해여성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와 조직 그리고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 전직 비서가 마침내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 이를 고발했을 때에 여성가족부도, 여성국회의원들도 그녀를 위해 나서지 않았다. '피해호소인'이란 생소한 명칭을 사용했고, 가해자의 사망에 따른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하고자 했으며, 피해자에 대한 인터넷 댓글 공격이나 5일간의 '서울특별시장'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로 가혹하기만 했다. 그들의 페미니즘은 무엇이었던가?



환경생태주의 역시 중요한 정치규범이자 생활규범이다. 환경생태의 향상과 보존은 경제성장이나 삶의 질과 으레 충돌하거나 길항관계에 있기 마련이어서 매 사안마다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과학적 분석과 민주적 토론을 같이 해야 한다. 4대강 사업에 대해 환경생태와 삶의 질 개선을 둘러싸고 상반된 주장들이 충돌해왔다. 사업이 끝난 후에도 16개 보의 개방 및 철거를 두고 온갖 정치적인 논란이 반복됐다. 그 환경생태주의자들은 탈원전정책 이후 진행된 태양광발전과 에너지 전환에 대해서는 아무런 주장도 하지 않는다. 원전을 대체하는 석탄발전이나 화력발전 그리고 LNG 발전의 미세·초미세먼지나 지구온난화 배출가스의 증대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는다. 장기간의 장마로 인한 산사태가 태양광패널을 설치하기 위해 이뤄진 삼림파괴와 어떠한 관련이 있으며, 무너진 발전시설로 인한 오염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용하기만 하다. 과연 이들이 환경생태주의자인지 의심스럽다.

인권변호사 출신의 대통령을 가진 나라에서 우리 민족 북한의 인권에 대해서 눈감고 있고, 정권에 속한 일부 특권세력 피의자의 인권을 중시하는 반면, 정권의 비리를 파헤치려는 언론사 기자나 검사에게 그 기준은 적용되지 않는다. 차라리 인권을 말하지 말라.

정치적 자유를 보호하고 다원적 가치를 인정하는 문제는 민주주의 이전의 가치이자 민주주의의 주춧돌이기도 하다. 민주주의, 성평등주의, 환경생태주의, 그리고 인권 그 모두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지배적 규범들이다. 하나의 가치가 상위에 서서 다른 가치들을 전제적으로 배타적으로 지배하고, 가치들 상호간에 위계서열이 존재하는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로 인해, 그리고 집단의 세속적 이익이나 관심에 따라, 어떤 지고한 규범이 묵살되거나 감춰지는 상황도 더욱 바람직하지 않다. 모든 근대적 보편적 인본적 가치들이 내세워지지만 그 실천적 실재를 찾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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