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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스토리]출판물 정가 할인 제한 '도서정가제' 갑론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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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아이클릭아트

발행 18개월후 가격변동 가능
15%이내 할인·사은품 등 골자
3년 주기 '타당성 검토' 앞둬…

웹툰·웹소설 가상화폐 허용등
민관협의체 개선 공감대 불구
"부담스러운 가격에 책 멀어져"
폐지 청원에 문체부 결정 미뤄

제도 시행후 서점·출판사 늘어
업계·작가들 "후퇴 우려" 목청
정부, 종합검토 방침 이목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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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값' 때문에 시끄럽다. 도서정가제 때문이다.

중·소형 서점들은 도서정가제가 사라지면 조금씩 늘어나던 동네 책방이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하고, 출판 업계에서는 도서정가제가 폐지되면 다양한 책이 나오지 못해 결국 독자들이 피해를 볼 거라고 한다.

책값이 너무 비싸 책을 읽지 않아 더 낮춰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도서정가제는 책값 즉, 출판물 정가의 할인을 제한하는 제도로 3년마다 타당성을 검토하도록 돼 있다. 그 시한이 11월 20일까지인데, 도서정가제를 어떤 기준으로 바꿔 더욱 합리적으로 운영할지 등을 두고 출판·서점 업계를 비롯한 곳곳에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 책값의 과도한 할인규제… '도서정가제'

도서정가제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도서정가제'는 책을 정해진 적정 가격대로 팔자는 것이 기본 취지다. 책값의 과도한 할인을 규제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자본을 앞세운 대형·온라인 서점과 대형 출판사의 할인 공세를 제한해 중소규모의 서점이나 출판사도 같은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도서정가제다. 대형마트의 횡포로부터 전통시장 상인을 보호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시작은 1977년 출판업계와 서점업계의 자율 협약으로 시작된 정가 판매제가 처음이다. 그러나 1990년대 말부터 대형마트, 인터넷 서점 등이 대량 할인판매를 실시하면서 이 자율 협약이 무력화됐다.

정부는 출판계·유통계·소비자단체 등의 의견수렴을 거쳐 2002년 '출판 및 인쇄진흥법' 입법을 추진해 도서정가제를 법제화했다. 이후 2008년, 2012년, 2014년 세부적인 조항이 지속적으로 개정되면서 현재에 이르게 됐다.

도서정가제 관련 법 조문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게 요약된다. 출판사는 책에 그 정가를 표시해야 하고, 발행한 지 18개월이 지나야 가격을 바꿀 수 있는데 바뀐 가격도 표시해야 한다. 전자출판물도 정가를 식별하도록 해야 한다.

판매자는 정가의 15% 이내에서 가격 할인과 경제상의 이익을 조합할 수 있다. 가격을 할인하는 폭이 10%를 넘으면 안 되고 상품권이나 할인권, 사은품 등으로 '경제상의 이익'을 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1만원짜리 책을 9천원에 판매하고 500원의 현금성 포인트나 선물을 얹어 주는 것이다. 3년마다 갱신해야 한다는 조항도 법에 있다.

법 27조에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제22조에 따른 간행물의 정가표시 및 판매(할인율을 포함한다) 제도에 관하여는 3년마다 그 타당성을 검토하여 폐지, 완화 또는 유지 등의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현행 제도는 2014년 11월 만들어진 것으로 2017년에는 '유지'했고, 다시 3년이 지났다. 조만간 '폐지', '완화', '유지' 등을 결정해야 하는 시한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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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한 서점 출입문에 부착된 도서정가제 시행 안내문. /연합뉴스

# 공감대를 이뤘지만, 결정 미루는 문체부

그런데 3년 전 별 탈 없이 '유지'로 결론이 났던 도서정가제를 두고 최근들어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문체부는 지난해 7월 출판계·전자출판계·유통계·소비자단체 등 13명으로 구성된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도서정가제 개선 방향을 논의해 왔다.

크게 3가지 방향에서 공감대를 이뤘다. 신간이 아닌 구간의 책값을 다시 책정할 수 있는 기준을 18개월에서 12개월 이상으로 완화했고, 웹툰·웹소설의 경우 정가 표시에 가상화폐 허용, 국가·지자체 구매도서 할인율 최대 10% 등이다.

최근까지 11개월간 16차례의 회의를 거쳐 마련한 안인데, 문체부가 관련 논의를 중단하고 최종 합의안 마련을 미루고 있다. 문체부는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여론을 더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0월 1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와 1개월 만에 20만9천133명이 동의한 '도서정가제의 폐지를 청원합니다'라는 글과 무관하지 않다.

청원인은 "지식 전달의 매체로서 책은 언제나 구할 수 있는 곳에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돼야 한다. 도서정가제는 부담스러운 가격에 도리어 독자들로부터 책을 멀어지게 하고 있다. 그렇기에 도서정가제의 폐지를 청원한다"고 글을 썼다.

이에 서점업계와 출판업계, 작가들은 문체부의 석연치 않은 움직임에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문체부가 현행 도서정가제를 지금보다 나쁜 조건으로 바꾸려 한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도서정가제
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있는 시민들. /연합뉴스

# 우려 목소리 내는 서점과 작가들

지난 8월 19일 전국 100여곳에 달하는 작은 서점 협의체인 동네책방네트워크(책방넷)는 서울에서 온라인 기자회견을 열고 '도서정가제 개악에 반대하는 전국 동네책방들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책방넷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도서정가제를 폐지하거나 후퇴시키는 방식으로 재검토하려 한다며 비판했다. 이들은 "민관협의체의 의견 수렴을 거쳐 결정된 합의안을 무시하고 갑자기 도서정가제 전면 재검토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면서 "작은 서점 폐업을 속출하게 했던 2014년 이전 법제로 되돌아가려고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2014년 현행 도서정가제 마련 이후의 긍정적인 변화를 소개했다. 전국 독립서점은 2015년 97곳에서 2020년 551곳으로 늘었고, 신생 출판사도 2014년 4만4천148개에서 2018년 6만1천84개로 증가했다. 신간 발행도 2013년 6만1천548종에서 2017년 8만1천890종으로 증가했다.

순수서점 감소 추세도 2014년 현행 법제 마련 이후 크게 둔화됐다. 현행 도서정가제가 서점·출판사 등의 증가를 이끌어내며 다양성을 높이고 풍성한 책 문화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요지였다.

책방넷은 "동네 책방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새로운 책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며 "책은 후대에 전승될 문화공공재이므로 '저렴한' 가격이 아닌, '적정한' 가격에 공급돼야 한다"고 했다.

한국작가회의는 지난 8월 31일 '도서정가제 개악에 반대하는 한국작가회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의 도서정가제 재검토 방침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작가회의는 성명에서 "도서정가제는 시장경제 논리로부터 출판계 전체의 다양성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방어막"이라며 "서점과 출판계에 만연했던 가격 경쟁을 완화하는 데 일조했으며, 전국적으로 개성 있는 출판사와 독립 서점 등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도서정가제 때문에 이제 간신히 작은 서점들이 기지개를 켜고 있고 도전적인 목소리를 가진 작가들이 다시 펜을 쥐려 힘을 얻고 있다. 또 다양한 내용과 판형을 실험해 보려는 출판사들이 늘어나고 있다"면서 "도서정가제는 출판의 다양성뿐 아니라 독자의 권익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정책으로 만일 건강한 출판문화를 훼손하는 사태가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한국작가회의 소속 작가들은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적절한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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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심 쏠리는 문체부의 최종안

문화체육부는 도서정가제 개정안에 대해 업계의 의견과 국민들의 여론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개정 시한인 11월 20일 이전까지 최종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한다.

문화체육부 관계자는 "출판산업 업계에서는 도서정가제를 강화하거나 최소 유지하는 방향으로 원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의 여론은 책값이 비싸고 할인 기회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여론이 있다"면서 "업계와 국민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다시 협의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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