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면의 '고서산책']고서로 우리의 현재를 톺아보다

조성면

발행일 2020-09-14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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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은 조선 중심의 中·日 지칭
현채가 발췌 번역 '청일전쟁 기록'
121년 전의 역사적 고서지만
한반도 지정학적 위상 지금도 같아
軍전략 평화중심 동아시아로 넓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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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지혜샘도서관 관장
고서의 효용은 무엇인가. 사료적·골동적 가치 이외에도 심미적 만족감을 줄 수 있다. 또 비대면 시대 코로나 블루와 무료함을 달래는 방편이 된다. TV·혼술·산책도 있지만 고서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SNS나 전자책의 편리성을 부인할 수 없지만, 고서점이나 도서관의 서가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책과 직접 만나 책장을 들출 때 영감이 솟고 새로운 차원의 사고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십년 전쯤 단골 고서점에 방문했다가 귀한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중동전기(中東戰紀)'라고 제목만 알던 책이었다. 책에 대한 내력을 대충 알고 있었지만 짧은 순간 엉뚱한 생각들이 명멸했다. 흔히 중동이라면 아랍지역인데, 이런 책을 광무 3년(1899)에 황성신문사에서 펴낼 리는 없고, 그러면 중동이란 말은 무엇인가.

유럽인들의 기준으로 보면 한·중·일이 동쪽의 맨 끝 곧 극동이라면, 아랍은 가운데 있는 동쪽 국가들 곧 중동이 된다. 그러니 아랍 국가들을 중동이라 하는 관행은 유럽 중심적인 말이다. 우리 입장에서 중동은 중간에 있는 서양, 곧 중서(中西)에 해당한다. '중동전기'도 이와 유사한데, 중국을 기준으로 보면 일본은 극동(極東)이요, 조선은 중국과 일본 사이의 중동(中東)이 된다. 또는 동쪽 끝의 나라 즉 일본(東)과 중국(中)의 전쟁이란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말이 낯설어 의미론적 생소함은 있지만, 우리식으로 말하면 '중동전기'는 한국에서 벌어진 중국-일본 간의 전쟁에 대한 기록, 곧 청일전쟁(1894~1895)의 전모와 경과를 정리한 책이다.

'중동전기'는 상하 2권으로 애국계몽기의 사학자 현채가 '중동전기본말'을 발췌, 번역한 책이다. '중동전기본말'은 미국의 선교사 임락지(林樂知, 본명 Young J. Allen)가 중국의 재야학자인 채이강과 공동으로 번역, 저술한 책으로 1897년 상해 광학회에서 출판되었다. 청일전쟁의 본말과 관련 외교문서 등이 집대성돼 있는데, 바다를 통한 방어, 즉 해방(海防)의 중요성을 강조한 장패륜과 일본의 부상과 조선의 상황을 동환(東患)이라고 표현한 이홍장의 상소에서 중국의 고민과 우려가 무엇이었는지 읽을 수 있다. 1592년에 발발한 임진왜란을 중국에서는 왜국에 맞서 조선을 도운 전쟁, 곧 항왜원조전(抗倭援朝戰)이라 하는데, 302년 만에 또 다시 일본과 전쟁에 직면한 중국은 한반도를 일본의 공세를 막아내는 완충지대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청일전쟁은 동학농민운동(갑오농민전쟁)을 핑계로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격돌한 청과 일본 간의 전쟁이다. 서해의 풍도·안성·평양 등을 거쳐 여순에 이르는 광범한 지역에서 접전을 벌였으며, 전투 결과, 중국의 북양함대는 궤멸하고 이를 계기로 일본은 제국주의적 확장의 교두보를 확보하게 된다. 1900년 당시 고종폐위운동을 벌이다 감옥에 수감돼 있던 청년 이승만은 '중동전기'를 '청일전기'란 이름으로 번역, 1917년 하와이에서 출판했다.

'중동전기'는 121년 전의 역사적 기록물이지만,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상은 전혀 달라진 바 없다. 항상 우리의 발목을 붙드는 분단체제도 그렇고, 격화하는 미-중 패권 경쟁에, 개헌과 재무장의 길을 노리는 일본 등 국제관계는 시계 제로다. 한반도를 염두에 둔 우리 군사전략의 중심을 이제는 동아시아 지역 전체를 고려한 적극적 평화전략으로 이동시킬 필요가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우리의 시민운동과 문화운동도 시야를 넓혀 동아시아 차원으로 확장하는 한반도발(發) 평화담론의 구축을 향해 나가야 한다. '중동전기'는 남의 나라 일을 타인이 기록한 케케묵은 고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역사적 기록물이며 과거를 통해 지금의 우리를 비춰보고 톺아보는 좋은 참고자료요, 거울이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지혜샘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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