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한 인천 '팔미도 등대'가 국가 문화재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15일 인천상륙작전 70주년 기념일을 맞아 인천 팔미도 등대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57호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사적이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있었던 건축물과 장소로 국가가 지정한 문화재다.
문화재청은 "이 등대는 6·25전쟁 당시 수도 탈환의 성공적 발판으로 평가받는 '인천상륙작전'에서 연합군 함대를 인천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전쟁의 국면을 일시에 뒤바꾸는 데 이바지한 역사·상징적인 가치가 있다"고 지정 이유를 밝혔다.
1903년 4월 높이 7.9m, 지름 2m 규모로 준공된 팔미도 등대는 그해 6월1일 국내 최초로 점등됐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식 등대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콘크리트 건축물이기도 하다.
6·25 전쟁 당시 낙동강에서 방어 전선을 펼치던 연합군은 전세를 역전하기 위해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했고, 이때 팔미도 등대가 함대를 유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켈로(KLO)부대의 정예 대원 6명은 1950년 9월15일 0시를 기해 팔미도 등대를 점령하라는 임무를 받았고, 이들은 전날 저녁 팔미도 잠입에 성공했다. 대원들은 팔미도를 수비하던 북한군과의 교전에서 승리해 9월14일 오후 11시45분 상륙작전의 서막을 알린 점등에 성공했다.
조수 간만의 차가 크고 암초가 많아 인천 해안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던 7만명의 연합군은 팔미도 등대에 불이 켜지자 차례로 진격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리에 마쳤다.
팔미도 등대는 100년 동안 인천 앞바다의 길잡이가 되어주다 2002년 2월 인천시가 유형문화재(40호)로 지정한 뒤 소등했다. 실제 항로표지 기능을 하는 현대식 등대는 2003년 12월 팔미도에 따로 세워졌다.
/윤설아기자 say@kyeongin.com
문화재청은 15일 인천상륙작전 70주년 기념일을 맞아 인천 팔미도 등대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57호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사적이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있었던 건축물과 장소로 국가가 지정한 문화재다.
문화재청은 "이 등대는 6·25전쟁 당시 수도 탈환의 성공적 발판으로 평가받는 '인천상륙작전'에서 연합군 함대를 인천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전쟁의 국면을 일시에 뒤바꾸는 데 이바지한 역사·상징적인 가치가 있다"고 지정 이유를 밝혔다.
1903년 4월 높이 7.9m, 지름 2m 규모로 준공된 팔미도 등대는 그해 6월1일 국내 최초로 점등됐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식 등대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콘크리트 건축물이기도 하다.
6·25 전쟁 당시 낙동강에서 방어 전선을 펼치던 연합군은 전세를 역전하기 위해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했고, 이때 팔미도 등대가 함대를 유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켈로(KLO)부대의 정예 대원 6명은 1950년 9월15일 0시를 기해 팔미도 등대를 점령하라는 임무를 받았고, 이들은 전날 저녁 팔미도 잠입에 성공했다. 대원들은 팔미도를 수비하던 북한군과의 교전에서 승리해 9월14일 오후 11시45분 상륙작전의 서막을 알린 점등에 성공했다.
조수 간만의 차가 크고 암초가 많아 인천 해안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던 7만명의 연합군은 팔미도 등대에 불이 켜지자 차례로 진격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리에 마쳤다.
팔미도 등대는 100년 동안 인천 앞바다의 길잡이가 되어주다 2002년 2월 인천시가 유형문화재(40호)로 지정한 뒤 소등했다. 실제 항로표지 기능을 하는 현대식 등대는 2003년 12월 팔미도에 따로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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