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기운을 북돋아 주는 생선

이진호

발행일 2020-09-17 제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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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 수라상 올랐던 여러이름 가진 '조기'
최근 40여년만에 인천 앞바다 모습 드러내
작년 옹진위판량 74.4t… 2012년比 '50배'
올해 추석엔 참조기로 풍성한 차례상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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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
얼마 전 '인천 한세기'의 저자인 고(故) 신태범 박사가 남긴 자료를 보다 '굴비(1997년 3월)'라는 제목의 칼럼을 찾아보게 됐다. 개인적으로 대학에서 박사님께 '먹는 재미 사는 재미'라는 교양 강의를 들었고, 기자가 된 이후 '격동 한세기 인천 이야기' 시리즈를 취재하면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던 터라 우연히 찾은 선생님의 글은 반가웠다. 당시 85세였던 신태범 박사는 글을 마치면서 이런 소원을 하셨다. "잿빛 껍질에 황금색으로 번쩍이는 큰 손바닥 만한 알배기 참조기로 만든 굴비를 다시 한 번 먹고 떠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면서 1920년대 소학교 시절 굴비를 챙겨주시던 할머니를 회상했다. "밥상에 놓인 굴비를 들어 대가리를 떼어 낸 후 껍질을 벗겨 흰 살을 뜯어주신다. 남는 몸살과 알이 찬 뱃대기(3마리에 2마리는 알배기였다)는 따로 거두어 두시고 대가리에 있는 눈과 잔살 그리고 지느러미살을 골라 드신다. 나중에는 비늘을 긁어낸 껍질까지 밥을 싸서 잡수신다. 할머님께서 굴비 한 마리를 남김없이 다루시던 알뜰한 손놀림이 신기해서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조기는 머리에 돌 같은 것이 있다 해서 석수어(石首漁), 석어(石漁) 또는 노란 몸에 돌이 들어 있다고 황석어(黃石漁)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어느 날 영조가 조기를 좋아하는 것을 본 신하가 영조에게 "석어는 몸에 기운을 북돋아 준다고 조기(助氣)라고 한다"고 말한 이후 석어 대신 조기로 불렸다는 얘기도 있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조선 21대 임금 영조는 "조기는 민어보다 기름이 많지 않아 담백하다. 조기는 강화에서 난 것이 좋으니 그것을 인원왕후께 올리라"고 했다. 조기를 잘 씻어 염장했다가 채반에 말린 것이 굴비다. 굴비라는 이름은 고려시대 이자겸이 법성포 지역에 귀양을 갔다 말린 조기를 먹어보고는 임금께 진상하면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뜻으로 굴비(屈非)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미 고려말부터 굴비가 임금의 수라상에 올라왔는데도 영조가 영광의 것보다 강화의 것이 더 좋다고 한 것은 아마도 보리밥에 물을 말아먹고, 고추장에 밥을 비벼 먹을 정도로 기름진 음식보다 담백한 맛을 좋아하던 식성 때문으로 보인다.

조기는 4월 말부터 5월 초에 서해 연안도서 해역으로 떼를 지어 북상한다. 칠산 앞바다와 연평 앞바다를 뒤덮다시피 밀려드는 조기를 그물로 건져 올린다. 40~50여년 전만 해도 이때면 전남 영광, 인천 연평도, 서울 마포에 조기 파시(波市)가 섰다고 한다. 신 박사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자. "제철에나 한번 보게 되는 참조기를 두고두고 먹기 위해 장만하는 것이 굴비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조기철만 오면 선창에 나가 동 단위로 사다가 우선 조깃국으로 포식하고 절여서 말리는 중간에 구워 먹기도 하다가 바짝 말려 굴비를 만들곤 했다. 굴비는 생으로 뜯어 먹는 것이 상례고, 때로는 굽거나 쪄서 먹기도 했다. 기름지고 고소한 맛과 짭짤한 감칠맛이 나는 훌륭한 반찬이다. 이제 서해에 살던 참조기가 멸종되어 간 지 20년이 넘었고 짜게 절여 딱딱하게 말린 것도 아닌데 굴비라고 할 수 없다."

70년대 이후 자취를 감췄던 조기가 최근 인천 앞바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획량이 최근 5년 사이 꾸준히 늘기 시작하더니 지난해 옹진수협 위판량 기준으로 74.4t을 기록했다. 2012년 연평도 조기 어획량이 0.8t에 그친 것에 비해 50배 이상 증가했다. 2013년부터 '조기 어장' 부활을 위해 연평도 해역에 어린 참조기를 방류한 인천수산자원연구소의 노력 덕분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올 추석 차례상 차림 비용도 변함없이 올랐다. 게다가 올 추석은 전염병으로 더 우울해질 모양이다. 모처럼 인천 앞바다에서 잡은 실한 조기를 올린 차례상이라도 풍성해지길 기대해 본다.

/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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