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한밤중 무섭다 울고 한겨울 설거지 고무장갑 사갔다"… 이웃들 '방임 신고'

인천 '라면형제' 비극… "너무 작고 말라 유치원생인줄 알았다"

박현주 기자

입력 2020-09-17 12:3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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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형제 단둘이 집에서 라면을 끓이던 중 불이 나 크게 다친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진 16일 오전 인천시 미추홀구 화재현장에 불에 타다만 집기류와 학용품이 놓여져 있다. 이들 형제는 이날 오후까지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는 위중한 상태로 알려졌다. 2020.9.16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초등학생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비쩍 말랐어요."

집에서 단둘이 라면을 끓이다 불이 나 중화상을 입은 A(10)군과 B(8)군 형제(9월 17일자 1면 보도)는 화재 발생 전부터 이웃들이 "아이들이 방치되고 있다"고 여러 차례 관련 기관에 신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인천 미추홀구의 형제가 살던 빌라 인근에서 40년째 슈퍼마켓을 운영한 70대 주민은 형제를 "한겨울에 고무장갑을 사러 온 아이들"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슈퍼마켓 주인은 키가 작고 비쩍 마른 남자아이가 가게에 와서 고무장갑을 찾는 게 의아해 그 이유를 물었다고 한다.

슈퍼마켓 주인은 "형 A군이 '겨울이라 설거지하는 데 손이 너무 시리다'고 대답했는데, 키가 너무 작아서 처음엔 유치원생인 줄 알았다"며 "당시 일요일이었는데도 아이 혼자서 고무장갑을 사러 온 게 너무 이상해서 또렷하게 기억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늦은 밤 아이들이 "엉엉"우는 소리에 잠이 깨서 몇 차례나 빌라 앞으로 나왔다고 한다. 주민들이 경찰에 신고한 것도 여러 차례였다고 했다. 한 주민은 울음소리가 난 다음 달 A군 형제를 보고 "왜 울었니"라고 물었는데, 형제는 "무서워서 울었다"고 답했다고 한다.

용현동 화재 현장
초등학생 형제 단둘이 집에서 라면을 끓이던 중 불이 나 크게 다친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진 16일 오전 인천시 미추홀구 화재현장에 불에 타다만 집기류와 학용품이 놓여져 있다. 이들 형제는 이날 오후까지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는 위중한 상태로 알려졌다. 2020.9.16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이 주민은 "아이 엄마가 애들을 때리거나 혼내서 우는 게 아니라 둘만 남아 있어서 무서워서 울었던 것"이라며 "잠을 잘 시간에 아이들이 하도 크게 울어서 나왔는데, 너무 서럽게 우니까 마음이 좋지 않아서 그냥 돌아섰다"고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A군 형제가 사는 빌라 인근 주민들은 하나같이 형제가 유치원생 정도로 작고 말랐다고 기억했다. 초등학생이라는 사실은 아침 등굣길에 책가방을 메고 나온 것을 보고 알았다고 한다. 이들 형제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한 학부모도 A군 형제를 자주 봤다고 했다. 

이 학부모는 "학교에 가려면 걸어서 15~20분 걸리기 때문에 보통 어른들이 데려다 주는데, 늘 둘이서만 손잡고 다녔다"며 "학교라도 갔으면 이런 일이 안 생겼을 텐데 참담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인천시와 더불어민주당 허종식(인천 동구미추홀구갑) 국회의원실에 따르면, 어머니 C(30)씨가 아들 A군과 B군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방임한다는 신고가 접수 된 것은 2018년 9월 16일이다. 지난해 9월 24일 두 번째 신고가 접수됐고, 올해 5월 12일 세 번째 신고가 관련 기관에 접수됐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올해 5월 29일 인천가정법원에 분리·보호 명령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C씨에게 1주일에 한 번씩 6개월 동안 전문기관 상담을 받고, A군 형제는 12개월 동안 상담을 받는 상담 위탁 보호처분을 내렸다. 이들 가족에 대한 상담은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A군 형제는 지난 14일 오전 11시 16분께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 불이 나 중화상을 입었다. A군은 전신 40% 화상을 입었고, B군은 5% 화상을 입었지만, 장기 등을 다쳐 위중한 상태다. 평소 같으면 학교에 있었을 시간이었는데, 학교가 비대면 원격 수업을 진행하면서 집에 머무르며 단둘이서 끼니를 해결하려다 참변을 당했다. 

/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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