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손시려 고무장갑 사간 형제… 사고난 그날처럼 '엄마는 없었다'

오랜기간동안 방치 이어진 인천 '라면 형제'

박현주 기자

발행일 2020-09-18 제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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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 형제가 라면을 끓여 먹다 화재가 발생한 인천시 미추홀구 한 빌라 외벽이 17일 오전 검게 그을려있다. 2020.9.17 /연합뉴스

양육 핑계로 자활근로 결근 불구

주민들 "평소에도 자주 집 비워"
'3차례 방임신고' 끝 보호처분도
경찰 '아동학대 혐의' 조사 착수

 

집에서 단둘이 라면을 끓이다 불이 나 큰 화상을 입고 중태에 빠진 A(10)군과 B(8)군 형제(9월 17일자 인터넷 보도=인천 경찰청, 라면 형제 사건 '아동학대 여부' 특별점검)는 화재 발생 전부터 이웃들로부터 "방치되고 있다"는 신고가 관련 기관에 들어왔다.

소방당국은 초등학생 형제의 어머니 C(30)씨가 화재가 발생하기 전날부터 형제만 남긴 채 집을 비웠던 것으로 파악했다. 지난해부터 자활근로를 했던 C씨는 '아동 양육'을 이유로 한 달 넘게 무단결근했는데, 이 기간에도 형제가 단둘이 남겨질 때가 많았다는 게 이웃들의 얘기다.

인천 미추홀구의 형제가 살던 빌라 인근에서 40년째 슈퍼마켓을 운영한 70대 주민은 형제를 "한겨울에 고무장갑을 사러 온 아이들"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슈퍼마켓 주인은 키가 작고 비쩍 마른 남자아이가 가게에 와서 고무장갑을 찾는 게 의아해 그 이유를 물었다고 한다.

슈퍼마켓 주인은 "형 A군이 '겨울이라 설거지하는 데 손이 너무 시리다'고 대답했는데, 키가 너무 작아서 처음엔 유치원생인 줄 알았다"며 "당시 일요일이었는데도 아이 혼자서 고무장갑을 사러 온 게 너무 이상해서 또렷하게 기억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늦은 밤 아이들이 "엉엉"우는 소리에 잠이 깨서 몇 차례나 빌라 앞으로 나왔다고 한다. 주민들이 경찰에 신고한 것도 여러 차례였다고 했다. 한 주민은 울음소리가 난 다음 날 A군 형제를 보고 "왜 울었니"라고 물었는데, 형제는 "무서워서 울었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 주민은 "아이 엄마가 애들을 때리거나 혼내서 우는 게 아니라 둘만 남아 있어서 무서워서 울었던 것"이라며 "잠을 잘 시간에 아이들이 하도 크게 울어서 나왔는데, 너무 서럽게 우니까 마음이 좋지 않아서 그냥 돌아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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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형제 단둘이 집에서 라면을 끓이던 중 불이 나 크게 다친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진 16일 오전 인천시 미추홀구 화재현장에 불에 타다만 집기류와 학용품이 놓여져 있다. 2020.9.16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이들 형제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한 학부모도 A군 형제를 자주 봤다고 했다. 이 학부모는 "학교에 가려면 걸어서 15~20분 걸리기 때문에 보통 어른들이 데려다 주는데, 늘 둘이서만 손잡고 다녔다"며 "학교라도 갔으면 이런 일이 안 생겼을 텐데 참담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머니 C씨는 지난해 7월부터 집 근처 지역자활센터에서 자활근로를 했으나, 올해 8월부터 계속 결근한 것으로 확인됐다. C씨가 일하는 자활센터는 올 3월 코로나19 확산으로 휴관했다가 8월부터 운영을 재개했다.

C씨는 휴관 기간에도 급여를 받았다. 운영을 재개한 후 센터 측이 C씨에게 출근해야 한다고 연락하자, C씨는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서 못 나간다"고 답하고 출근하지 않았다.

지역자활센터 관계자는 "C씨에게 출근해야 한다고 몇 차례 연락했지만, 집에서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고 했다"며 "지난달부터 출근하지 않았으나, 자활근로 기간이 종료되기 전까지 급여는 한 달에 60만원 가량 지급되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시와 더불어민주당 허종식(인천 동구·미추홀구갑) 국회의원실에 따르면, C씨가 아들 A군과 B군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방임한다는 신고가 접수된 것은 2018년 9월16일이다. 지난해 9월24일 두 번째 신고가 접수됐고, 올해 5월12일 세 번째 신고가 관련 기관에 접수됐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올해 5월29일 인천가정법원에 분리·보호 명령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C씨에게 1주일에 한 번씩 6개월 동안 전문기관 상담을 받고, A군 형제는 12개월 동안 상담을 받는 상담 위탁 보호처분을 내렸다. 이들 가족에 대한 상담은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A군 형제는 지난 14일 오전 11시16분께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 불이 나 중화상을 입었다. A군은 전신 40% 화상을 입었고, B군은 5% 화상을 입었지만, 장기 등을 다쳐 위중한 상태다.

평소 같으면 학교에 있었을 시간이었는데, 학교가 비대면 원격 수업을 진행하면서 집에 머무르며 단둘이서 끼니를 해결하려다 참변을 당했다.

경찰은 화재 당시 방임 등 아동학대가 있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C씨 등을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따져보고 C씨에 대한 입건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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