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인의 '생활관상']그늘속 감춰진 삼백안(三白眼)의 또 다른 가치에 국가 명운을 걸다

김나인

발행일 2020-09-21 제18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카카오톡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동공이 좌우와 위나 아래로 드러나
대체로 눈망울 돌출된 사람에 많다
포악·욕망 발톱 숨기고 산다지만
쓰임새 따라 영웅이면 나라구할상
대통령 용안도 처음엔 그랬는데…

2020091801000842000042141
김나인 한국역리연구소 소장
눈은 마음의 창이요, 마음을 담은 그릇이며 그 사람의 기운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정신기(精神氣)가 모여있는 주체적 자아가 자리하고 있는 부위이다. 눈으로 인사한다는 말이 있듯이 사람을 만나 대면할 때 제일 먼저 마주치는 부위가 바로 눈이다. 백안(白眼)이란 흰자위로 가득한 눈이란 뜻으로 평소에는 가려져 있더라도 격한 감정으로 사람을 째려보거나 눈을 내리깔고 경시하는 듯 바라보면 당연히 흰자위가 돌출된다.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고 삐딱하게 흘겨본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될 듯하다. 이런 시선으로 상대방을 바라본다면 느낌도 좋지 않을뿐 아니라 무시당한다는 생각도 들 것이고 섬뜩한 느낌도 받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동공의 좌우로 펼쳐진 이백안(二白眼)인데 삼백안, 사백안의 눈을 가진 사람도 종종 있다. 삼백안 중에서 흰자위가 위로 드러나는 경우를 '상삼백안(上三白眼)'이라 하고 아래로 드러나는 경우를 '하삼백안(下三白眼)'이라 하며 좌우까지 드러나게 되면 '사백안(四白眼)'이라고 한다. 여하튼 삼백안의 눈을 보면 대체로 눈망울이 돌출된 사람이 많으며 보기에도 두렵고 거부감마저 드는 것은 사실이다.

관상학에서는 이런 형상의 눈으로 상대방을 바라보기 때문에 성정이 난폭하고 간사하고 고집이 세며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무슨 짓이든 다하는 사람으로 삼백안을 설명하고 있다. 성격이 포악하고 제 명대로 살기 힘들다고도 했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삼백안의 눈을 갖고 있어도 검은 자위가 칠흑같이 빛나고 광채가 있으며 눈동자는 바르고 시선이 흩어지지 않고 눈썹이 수려하고 눈꼬리까지 길게 이어져 눈을 잘 감싸고 밝게 빛나면 눈의 정기를 보듬어 끌어안은 형상이니, 공명이 하늘 끝까지 닿은 사람이고 준두(콧등의 끝부분)가 코 뿌리까지 이어져 이마에까지 솟아있으면 부귀 또한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려우니 대부호의 상이라고 볼 수 있다. 좋은 눈을 가진 사람도 음흉하고 사특한 마음을 감추고 사는 사람도 있고 이처럼 삼백안의 눈을 갖고 있어도 성정이 바르고 어진 사람도 많이 있다. 삼백안이라 하여 무조건 남을 무시하고 깔보며 잔인한 사람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올바른 판단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다가도 화가 나거나 감정이 격해지면 눈을 부라리게 되고 동공에서는 불을 뿜으며 눈동자의 '상하부위(上下部位)'가 흰자위로 차오르게 된다. 누구라도 삼백안의 눈의 형상을 품고 살아간다는 말이다. 이백안의 눈을 가진 사람도 잔혹하고 냉정하고 이기적인 사람이 많다. 삼백안의 눈을 가진 사람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길이라면 부모 형제도 팔아먹는 아주 냉혹한 사람이라 단정 짓는 것은 지나친 편견이기에 올바른 관상법의 접근이 아니다. 사람의 욕망과 욕심은 눈동자의 형상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욕망의 발톱을 숨기고 더럽고 추악한 행동은 숨어 행하면서 의롭고 자비로운 사람인 양 자신의 실체를 숨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진짜 삼백안이다. 관상을 통해 사람의 얼굴을 살피고 판단하는 일은 짜임새가 어떤지를 묻는 일이 아니라, 그 생김새의 틀을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느냐를 묻는 쓰임새의 통변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볼품없는 녹슨 칼 한 자루도 백정이 들고 있으면 소 잡는 일에 쓰이는 것이고 잘 갈고 닦아 영웅의 손에 들리면 나라를 구하는 데 쓰이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처음에는 그랬다. 동공은 약간 돌출했으나 이는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행복한 삶을 향한 적극적이고 지극한 관심의 표상이라 보기에 충분했고, 용안(龍眼)을 닮은 맑고 밝은 정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눈빛은 세상을 다스리는 참된 지도자로서 국민의 지지를 받는데 충분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삼백안이라 하여 무조건 나쁘고 문제 있다 하는 것은 지극히 잘못된 편견이라고 광화문 대선 생방송 콘서트에 출연하여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할 자신이 없다. 세상의 변화와 흐름을 파악하고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며 판단하는 기운은 마음의 창인 눈빛에서 생겨나는 것이고 눈빛의 변화는 마음의 여분일진대, 그때의 용안이 지금에 와서 낭안(狼眼)처럼 비춰지는 것은 필자만의 느낌일까. 한가위 만월(滿月)에 거는 기대감이 위태롭기만 하다.

/김나인 한국역리연구소 소장

김나인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

경인일보 채널

  • 강원일보
  • 경남신문
  • 광주일보
  • 대전일보
  • 매일신문
  • 부산일보
  • 전북일보
  • 제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