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근 칼럼]덕분에

전호근

발행일 2020-09-22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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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은 혼잡하고 밀폐된 공간
코로나19가 전파되기 좋은 환경
뜻밖에도 감염사례가 나오지 않아
방역당국 아무리 예방 애쓰더라도
평범한 사람들 노력없이는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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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지하철을 탔다. 퇴근 시간 무렵이라 꽤나 북적인다. 외신으로 보거나 전해 들은 다른 나라의 텅 빈 지하철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선을 스마트폰에 고정하고 있지만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듣거나 드물게 책을 펼쳐 든 이들도 보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킬 수 없을 정도로 가깝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말이 없다.

예전이라면 이런 풍경이 괴기스럽게 보였겠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마스크를 써 표정은 보이지 않고 눈만 보이지만 사람들의 눈빛에서 무언가 간절하게 기다리는 마음이 읽힌다. 아마 나 또한 같은 것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직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하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 나는 이게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대중교통 수단은 대개가 혼잡하고 밀폐되기 쉬운 공간인지라 코로나19가 광범위하게 전파되기 좋은 환경이다. 이렇게 감염 위험이 큰 곳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대중교통 수단에서 뜻밖에도 감염 전파 사례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

그 까닭을 의료진이나 방역 당국의 노력에서 찾는 것은 합리적이다. 아울러 환경관리 노동자들의 노고 또한 크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 공간이 있다면 그 또한 누군가 사람들의 손이 닿는 곳을 일일이 닦아내며 소독을 했기 때문임이 틀림없다. 결국 혼잡한 대중교통 공간에서 바이러스가 전파되지 않는 것은 의료진과 방역 당국의 노력에 더해 환경 노동자들의 노고가 빛을 발한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감염이 일어나지 않은 데에는 이 모든 것을 합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바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평범한 시민들의 노력이다. 방역 당국이나 해당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아무리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애쓰더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매일같이 출퇴근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예방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생업을 이어가며 부지런히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들은 자신과 이웃 그리고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마스크를 단단히 착용하고 방역 수칙을 잘 지키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웃과 공동체를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무리 많이 모여도 안전한 것이다. 어떤 이는 이른바 깜깜이 감염이 대중교통 수단에서 일어났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곳도 마찬가지이고 보면 정작 깜깜한 것은 대중교통 수단이 아니라 감염되고 나서도 자신의 이동 경로를 밝히지 않는 이들의 마음 속이 아닐까.

자신은 특별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마스크를 잘 쓰지도 않고 사람들을 만날 때도 조심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자신은 감염되지 않는다고 자신하거나 감염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혹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과 달리 치료를 받기 위해 일을 쉬어도 생계에 지장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들의 특별함은 공동체의 안위를 염두에 두지 않는 어리석은 이기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바이러스 감염의 위험에도 지하철이나 버스로 출퇴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대다수는 생산직이나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임금 노동자들이거나 영세 자영업자들이며 코로나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나는 지하철을 탈 때면, 이 속에서 모종의 동맹 의지마저 느낀다. 내가 안전해야 당신이 안전하며, 당신이 안전해야 내가 안전하다는, 그리고 이곳의 안전은 절대 지켜져야 한다는 굳은 동맹 말이다.

평범한 시민들의 방역과 관련된 노력은 놀라울 정도다. 마스크를 쓰거나 손을 자주 씻는 생활 수칙은 말할 것도 없고 모임이나 여행을 자제하는가 하면 심지어 명절 귀성마저 삼가고 있다. 우리는 감염 예방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지하철에서 본 사람들의 눈빛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다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기도하는 눈빛이었다.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이렇게 굳건하다면 우리 공동체는 마스크를 벗고 살아가는 일상을 틀림없이 회복할 것이다. 우리 공동체가 다른 곳보다 안전하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버스와 전철 속의 안녕을 지켜나가는, 바로 당신과 나의 덕분이다.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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