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부평사직단 위치·경관 형태 밝혀졌다

경인교대 기전문화연구소 개가
주요 고지도 속의 부평 사직단
주요 고지도 속의 부평 사직단의 기록. 왼쪽부터 '지승'과 '해동지도'. /경인교대 기전문화연구소 제공

마을 농사·국가안위 기리던 제단
계양구 추진 복원작업도 가속도


600여년전 조선시대 부평도호부가 설치한 사직단(社稷檀)의 위치와 경관 형태를 밝혀낸 연구 결과가 나왔다. 국가 사직단과는 구별되는 지방 고을 사직단의 전체적인 경관 형태를 고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천 계양구가 추진하는 부평 사직단의 복원 작업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경인교육대학교 기전문화연구소는 조선시대 부평 사직단의 정확한 위치와 사직단을 구성하는 주변 경관 형태를 밝혀냈다고 22일 밝혔다.



사직단은 농사와 국가의 안위를 기리는 고을의 제사를 모시던 제단이다.

사직단의 '사(社)'는 토지신을, '직(稷)'은 곡식신을 뜻하는데, 국토와 식량을 상징하는 '사직'은 국가 그 자체를 의미하는 용어로 쓰였다. 사직단은 조선시대 태종6년(1406년)부터 전국 각 고을에 설치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부평 사직단도 이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소는 부평 사직단의 위치가 계양구 고양골체육관 국궁장과 북인천중학교 운동장 사이의 구역임을 밝혀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조사한 '부평 사직단 국유림 경계도'가 주요 근거가 됐다. 그동안 부평 사직단의 위치는 인천 서구 공촌동 경명대로 북쪽이라고 알려져 있었는데, 이는 잘못된 추정이라고 연구소는 설명했다.

부평 사직단의 경관 구성 모식도
부평 사직단의 경관 구성 모식도. /경인교대 기전문화연구소 제공

연구소는 또 전체적인 사직단의 경관 형태를 고증했다. 제단뿐 아니라 제례 후 생긴 재 등 부산물을 묻어두는 예감, 제단을 둘러싼 낮은 담장인 '유', 유를 드나드는 '유문', 그리고 신위를 보관하는 '신실', 유를 둘러싸는 소나무, 잣나무, 밤나무 등의 단수 등의 규격과 배치 형식을 밝혀냈다.

전종한 기전문화연구소 소장은 "고을 사직단은 조선 500년 동안 신성하게 여겨진 곳으로 조선시대 문화를 살필 수 있는 중요 문화 유적이다. 이 사직단의 위치와 경관을 밝혀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이번 연구 결과가 나옴에 따라 사직단 복원사업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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