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경인칼럼]'관(官)업(業)이 한통속'

수도권 재개발·재건축은 메이저사 각축장
그러나 요즘은 '중견건설사 편법'에 딴세상
비결은 수십개 자회사 동원 '벌떼 입찰' 탓
정부 알면서 허점대책… '3기'에 재연 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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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표 논설위원
수원·성남 등 수도권 재개발·재건축 현장은 삼성·현대 등 메이저 건설사들의 각축장이다. 대기업 브랜드는 정비조합과 조합원들이 선호한다. 반면 화성 동탄2지구와 고양 향동지구 등 택지개발지구는 딴 세상이다. 대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중흥·호반·반도 등 중견 건설사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동탄2신도시에는 B건설사의 아파트 단지가 유난히 많다. B단지가 10개나 된다. 고양시 향동지구는 5개 민영아파트 단지 가운데 3곳(60%)이 H사의 아파트다. 주택 건설사가 수천 개나 되는데, 이상하지 않은가.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택지개발지구의 공동주택용지를 공급하는 방식은 대략 3가지다. 첫째는 최고가 입찰이다. 해당 필지에 가장 높은 가격을 써낸 업체를 선정하는 것이다. 토지가격이 높으니 분양가가 높게 책정되는 것은 필연이다. 정부는 서민들에게 주택을 싸게 공급하겠다는 취지에서 벗어난다며 부정적 시각이다. 다음은 설계 공모다. 땅 크기와 주변 환경, 지역 특성을 반영한 설계 작품을 심사해 선정한다. 시비가 잦고, 특혜 의혹이 제기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 마지막은 추첨이다. 일정 자격을 갖춘 업체들이 제한 없이 응모하게 한 뒤 제비뽑기로 임자를 정한다. 어떤 결과라도 시비를 피할 수 있다. LH가 선택한 방법이다.



최고가 입찰제는 아파트 분양가 상승을 주도한다. 특정 기업이 많은 사업지를 가져가면 국민 선택권이 제한된다. LH는 공정성과 다양성을 고려하면 추첨제가 최선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특정 업체들의 독식은 더 심화한다. 쏠림을 방지하자는데 몇몇 업체만 잔칫상을 받는다. 비결은 수십 개 자회사를 동원하는 '벌떼 입찰'에 있다.

예를 들어 경쟁률 100대 1인 동탄의 공동주택부지가 있다. 특정 건설사가 자회사 40개를 입찰에 참가시켰다면 실제 경쟁률은 2.5대 1로 낮아진다. 타사보다 당첨 확률이 40배나 높아지는 셈이다. 그러니 수백 대 1의 경쟁률도 이들 회사에는 그저 한자릿수 이하의 낮은 수준에 그치고 만다.

경실련은 지난해 흥미로운 자료를 공개했다. 2008~2019년 LH가 분양한 아파트 용지의 낙찰 현황이다. 이 기간 중흥건설(자회사 47개), 호반건설(44개), 우미건설(22개), 반도건설(18개), 제일풍경채(11개) 등 5개 건설사에 돌아간 필지가 142개다. 전체(473개)의 30.0%를 차지한다. 대한주택건설협회에 등록된 건설사 수는 7천827개다. 전체 건설사의 0.6%가 신도시·공공택지지구 아파트 용지 3분의 1을 독식한 거다.

동탄에서 래미안을, 향동지구에서 힐스테이트 단지를 볼 수 없는 건 정상이 아니다. 주민들의 브랜드 선택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대기업은 '소비자 이미지'를 우려해 벌떼 입찰을 꺼린다. 중소 업체는 자회사를 거느릴 처지가 못 된다. 공공택지를 분양받으려는 건설법인은 자본금 3억~5억원과 토목·건축 기술자 3명 이상을 고용해야 한다. 제도적 허점과 업계의 심리를 파고든 상술이 비정상 궤도를 정상인 것처럼 포장한 것이다.

비판여론이 거세자 정부가 대책을 내놓았다. 택지 전매 허용범위와 요건을 축소하고 특별설계 공모 방식을 확대한다는 게 요지다. 하지만 입찰 자격을 3년간 실적 300호에서 700호로 강화한다는 조항은 슬그머니 없앴다. 입찰 건설사에 대한 신용평가등급 요구도 하지 않는다. 자회사를 통한 편법 수주를 묵인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업계의 반응이 싸늘한 이유다.

정부는 수도권 3기 신도시 건설에 조바심을 낸다. 세금 폭탄과 투기 때려잡기에서 공급확대로 방향을 급선회했다. 남양주·하남·과천·부천에 들어서는 신도시 보상금만 30조원에 달한다. 건설업계가 흥분할 초대형 토건 장이 서게 됐다.

지금 상황이라면 '그들만의 리그'가 재현할 개연성이 높다. 국토부와 LH가 모를 리 없다. 지역 업체들은 벌써 '부아가 치밀게 생겼다'고 푸념한다. 사후약방문은 미련한 방책이다. 그런데도 모른 체 한다면 '관·업이 한통속'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홍정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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