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인천 미추홀구 형제의 사고

박현주 기자

입력 2020-10-03 09:2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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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형제끼리 요리하다 불이 난 용현동 빌라의 화재현장. 2020.9.14 /인천 미추홀소방서 제공

지난 14일 점심 무렵 엄마가 없는 사이 라면을 끓이다가 불이 나 화상을 크게 입은 인천 초등학생 형제는 추석 명절에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화재가 발생한 다음 날 오전에 형제가 사는 빌라를 방문했다. 시커멓게 탄 집기 위에 아이들이 신었을 장화와 흰 실내화가 놓여 있었다. 화재는 119신고가 접수된 지 약 13분 만에 진화됐으나, 30㎡ 규모 빌라의 방 2개와 거실 겸 부엌을 상당 부분 태웠다. 현장에서 뿜어져 나온 연기 탓에 4층짜리 빌라 모든 층에 그을음이 생겼다. 주민들은 당분간 집을 비워야 할 정도라고 했다.

주민들은 모자와 인사 한 번 제대로 나눈 적 없었다고 했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형제를 기억하고 있었다. 슈퍼 주인은 한겨울 고무장갑을 사러 온 아이들로, 형제와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학부모는 둘이서 등하굣길을 다니던 모습으로 기억했다. 분식점 직원은 참치 주먹밥을 사가고, 가끔 김치찌개를 포장해서 갔던 아이들을 떠올렸다. 주민들은 골목길을 오가던 형제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본 것이다. 이웃들은 매일 밤마다 울던 아이들이 안쓰러워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형제를 지켜봤던 기관도 많았지만, 다들 아이들의 처지를 이야기하는 걸 꺼렸다. 한 가정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라는 이유에서다. 기관 관계자들은 "어머니가 아이들을 잘 키우겠다고 했으니 더이상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고 했다.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기관조차 형제의 문제를 한 가정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위기를 먼저 알아차린 것도 주민들이었다. 형제가 방임되고 있다는 내용의 신고는 지난 2018년부터 올해까지 3차례에 걸쳐 접수됐다. 3차례 모두 이웃들이 신고했다. 오래된 다세대 빌라와 아파트, 주택이 한데 있던 이곳은 20~30년 넘게 살던 주민들이 많았다. 이들에겐 아직 '이웃 일이 남 일 같지 않다'는 정서가 남아 있었다. 주민들마저 형제 단둘이 남아 있었던 것을 두고 "형편이 좋지 않은 데다, 어머니 혼자 아이를 키우니까 그럴 수 있다"고 치부했다면 형제들이 처한 위기조차 감지할 수도 없었을 가능성이 컸다.

형제의 사고는 수차례 막을 기회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제도권 사각지대에서 벌어진 사회적 참사라는 게 명확해졌다. 참사 이후 방지 대책이 무수히 쏟아졌다. 취약계층 아동을 전수조사하고 아동학대 방지 예산이 크게 증액됐다. 대통령은 재발 방지 대책과 함께 "아동이 학대받거나 방치돼 이웃이 신고하더라도 부모의 뜻에 따라 가정에 다시 맡겼다가 비극적 결과로 이어지곤 했다"며 "상황이 해소될 때까지 강제로 아동을 보호하는 조치를 포함해 제도적 보완 방안도 찾아달라"고 했다.

이번 사고는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이 아직 '가정의 일'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 벌어진 참사다. 이를 중재할 제도적 장치도 작동하지 않았다. 한 가정이 겪은 불행쯤으로 여길 일이 아니다. 집 안 문제라는 '관념'으로 외면할 일이 아니었다는 걸 이번 참사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제2의 미추홀구 형제 사고를 막기 위해선 아동이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보호받을 권리가 우선돼야 한다. 잘못된 아동보호 시스템에 대한 인식과 제도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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