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숨은 이야기 대학별곡·64]'콘텐츠의 보물창고' 안양대학교 신학연구소 HK+사업단

동서양 오고간 '문명의 길' 고대 언어로 만나다

이석철·권순정 기자

발행일 2020-10-06 제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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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대학교의 HK+사업을 수행 중인 곽문석 교수가 사업단 연구실 앞에 놓인 '이드리시 지도'를 소개했다. 시칠리아의 왕 로저 2세 시대인 1154년에 아랍의 지리학자 이드리시가 제작한 이 지도는 신라가 등장하는 최초의 세계지도다. 좌측상단 맨 끝에 6개의 섬으로 묘사돼 있다(당시 한반도는 고려로 국호가 바뀌었다). 2020.10.5 안양/권순정기자 sj@kyeongin.com

고려 충렬왕, 당시 기독교 접했을 가능성 주목
그리스·라틴·아랍어, 한자문화 번역·수용 조사
위구르어 등 6개 소수언어강좌 전액 무료 개설
'신편천축국실록' 등 원문 번역·디지털화 예정
곽문석 교수 "근원적 연구 도전해 지평 넓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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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13세기를 살았던 고려 충렬왕(1236~1308)은 그리스도교를 접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는 1274년 5월 원나라 제국대장공주 홀도로게리미실과 혼인했는데, 홀도로게리미실의 할머니인 소르칵타니 베키가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다.

소르칵타니 베키가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기록은 한문으로 된 원사(元史)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14세기 서적인 원사는 홀도로게리미실의 이름을 사로화첩니(唆魯和帖尼)로 적고, '부인의 법도와 행동거지가 사당에 들어갈 정도로 훌륭했네'라며 그의 인품을 칭송하고 있다.

몽골제국에서 집사로 일했던 페르시아인 랏시드 앗 딘이 13세기 페르시아어로 기록한 글에도 '소르코티 베키는 지혜가 위대하고 자기절제와 심사숙고한다'고 인품에 대해서만 묘사하고 있다.

소르칵타니 베키는 몽골제국을 만든 칭기즈 칸의 가족이다. 그는 칭기즈 칸의 막내아들 톨루이의 부인이었고, 몽골제국의 이름을 '원'으로 짓고 중국을 정복한 쿠빌라이의 모친이다. 당시 몽골제국은 중국, 중앙아시아를 넘어 동유럽 일대까지 정복했으므로 칭기즈 칸 가족에 대해서는 여러 언어로 기록이 돼 있다.

소르칵타니 베키가 그리스도인이었다는 것은 13세기 바르헤브라이우스가 시리아어로 쓴 '연대기'에 등장한다. 바르헤브라이우스는 소르칵타니 베키를 '사르쿠타니 바기'라고 말하며 '이 여왕은 그녀의 아들들을 매우 잘 훈련시켰다.…그녀는 그리스도인이었으며 헬레나처럼 신실하고 진실했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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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문석 안양대학교 신학연구소 HK+사업단 교수는 "다양한 언어의 사료를 분석하고 비교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르칵타니 베키'를 키워드로 여러 사료를 비교하면 몽골제국에 그리스도교가 자리잡고 있었으므로, 원의 지배하에서 고려 역시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는 추론을 할 수 있다. 고대언어를 학습하고 여러 사료를 축적(collectio)-비교(collatio)-연결(connexio)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소르칵타니 베키에 대한 일련의 연구는 안양대학교 신학연구소가 HK+사업으로 진행하는 '동서교류문헌 연구: 텍스트의 축적(collectio), 비교(collatio), 연결(connexio)'의 한 예다.

안양대학교는 지난해 5월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인문학사업인 HK+ 사업 중 소외·보호/창의·도전 부문에 동서교류문헌 연구로 도전장을 내 당당히 선정됐다. 34개 대학 중 5개 대학이 당선됐고, 경기도내 대학은 안양대가 유일하다.

정부로부터 87억여원을 지원받고 대학에서도 일부 지원금을 내놓아 95억여원의 자금으로, 이은선 단장과 유럽 1세대 한국학 전문가인 마우리찌오 리오또(Maurizio Riotto) 교수, 곽문석·신원철·최정연·장시은·김석주·최형근·김보름·조용석 박사 등 모두 10명의 연구자들은 7년 동안 동서교류문헌 연구에서 소외됐던 분야를 집중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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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대 HK+사업단 동서교류문헌연구 학술대회 세미나에서 강의하는 마우리찌오 리오또 교수. 2020.10.5 /안양대 HK+사업단 제공

서양고대의 그리스어, 라틴어 문헌이 중세시대에 시리아어, 중세 페르시아어, 아랍어로 어떻게 번역됐고, 이 번역이 한자문화권으로 어떻게 수용됐는지를 추적 조사하는 것이다.

황도12궁은 이들의 연구분야다. 황도12궁을 키워드로 문명의 교류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인 프톨레마이오스(90~168)가 자신의 저서 '테트라비블로스'에 황도 12궁을 묘사했는데, 조선 태조 4년(1395)에 제작된 '천상열차분야지도'에도 이 황도12궁이 등장한다.

천년의 시간동안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 점성책은 인도를 거쳐 소아시아로, 소아시아에서 다시 아랍과 페르시아 문명으로, 그것이 소그드인들과 아랍인들을 통해 중국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곽 교수는 "프톨레마이오스의 '테트라비블로스'는 이븐 랍반의 아랍어 주석을 거쳐 명대에 와서 '명역천문서'로, 다시 조선 천문 점성학에 영향을 미쳤다"며 "테트라비블로스는 명역천문서의 내용을 통해 조선시대 천문점성학 책 '성요'에 그 내용이 인용돼 유통될 정도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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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세기 당대 서양과 동양을 오가며 문헌과 문물을 전해주던 소그드인 상인. /안양대 HK+사업단 제공

곽 교수는 이어 "몽골 제국은 워낙 컸기 때문에 문명을 좌우하던 사람들이 무슨 책을 읽는지, 뭘 쓰는지 궁금해하는 건 당연하다. 로마인들은 칭기즈 칸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라도 스파이를 심었고 이들이 보낸 기록들이 라틴어로 남아 있다. 문명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미쳤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보다 통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이번 HK+ 사업은 통합적 연구를 위해 1차 사료부터 번역하려 한다"고 말했다.

고대 문헌을 번역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현대 소수언어를 하는 사람들도 드문데 고대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만큼 한국의 인문학은 토대가 약하다.

곽 교수는 "그래서 소수언어학당을 열었다"고 설명했다. 현재 안양대 신학연구소에서는 위구르어, 라틴어, 시리아어, 페르시아어, 만주어, 그리스어 등 6개 언어를 위한 강의가 열리고 있다. 강의는 모두 무료이며 단 한 명이 해당 언어를 공부하겠다고 해도 강좌를 개설하는 것이 원칙이다.

강사는 소수언어 전공교수를 모시는 것이 첫 번째 기준이지만 전공자가 없다면 그 언어를 쓰는 외국인 학생을 섭외해서라도 강의한다. 아르메니아어와 조르지아어는 전공자도 없지만 외국인도 없어 강좌를 개설하지 못하고 있다며 적절한 강사를 모시기 위해 물색 중이라고 덧붙였다.

소수언어학당의 학생들은 원한다면 HK+교수들을 도와 함께 문헌을 강독하게 된다. 1차 사료를 더 많은 이들에게 읽혀 번역한다면 정확성과 신뢰도가 높아질 것이다. 소수언어를 처음부터 가르쳐야 한다는 데 있어 이 프로젝트가 효율성이 낮다는 지적이 나올 법하다.

하지만 곽 교수는 "지금까지 한국의 인문학은 많이 쓰는 언어, 관심이 많은 분야 등을 연구해 왔다. 이렇게 하다 보니 사료 원문을 보지 못하고 다른 문화의 시각으로 해석된 문헌에 기대게 돼 연구가 편중될 수밖에 없다. 인문학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는 보다 근원적인 연구에 도전해야 한다. 그것이 비록 더디고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고대 서적을 우리가 직접 읽고 번역할 수 있다면 정치적으로 밀려 사라진 역사나 편중된 시선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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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문석 교수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이 12세기 세계전도에 등장한 '신라'다. 2020.10.5 안양/권순정기자 sj@kyeongin.com

안양대 동서교류문헌연구는 올해 말부터 원문 번역본이 출판되기 시작한다. 내년 5월까지 신편천축국실록 1·2, 몬테코르비노의 몽골기행, 실론 자료집 외 9권을 번역해 출판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지'와 '알마게스트'는 그 이듬해에 번역 예정이다.

이 모든 문헌들은 최종적으로 '디지털 도서관'으로 구축될 예정이다. 이 도서관에서는 '소르칵타니 베키'를 검색했을 때 사로화첩니, 소르코티 베키, 사르쿠타니 바기 등의 이름으로 표기돼 왔음을 보여주게 된다. 또 각 문헌들에서 소르칵타니 베키에 대해 뭐라 묘사했는지 그 문구를 보여준다.

'황도12궁'을 검색한다면 그 이름의 변천사를 보여주고 고대에 기록된 문헌부터 현재까지 나열해 줄 것으로 보인다. 도서관의 장서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후대 연구자들은 동·서, 고대·현대 등을 넘나들며 사료들을 비교 연구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다른 문명의 시선이 아니라 한국의 시선으로 다시 쓰이게 될 전망이다.

인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터닦이가 바로 경기도 안양, 안양대에서 시작되고 있다.

안양/이석철·권순정기자 s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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